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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편집일: 2009-2-24 11:20 pm (변경사항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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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 웃기는 이야기는 푸훗에, 퍼온 글은 에 올려주세용~


다른 것은 모르겠고 내가 생각하는 진보는 뭐 이런 것이다. 적어도 한국에서 아파트를 잔뜩 만들고, 부실금융기관과 자동차회사를 살리기 위해 공적자금을 붓고, 애들을 피터지게 공부시키고, 나도 함께 피터지게 야근하는 이런 것은 진보가 아니다. 운하 안파도 좋으니까, 경제성장 안해도 좋으니까 이런 생활속의 진보를 만들면 좋지 않을까. 지금의 경기침체는 이런 것을 고민할 수 있게 하는 좋은 기회일 수도 있는데 우리는 과연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까.
-- 거북이 2009-2-24 11:20 pm

원문 : 음악매체편력기

1. 근대?

딱히 뭔가를 결산할 정도의 내공이라고 보긴 어렵지만 요즘 하도 상황이 어수선하게 바뀌어 나의 음악 매체 편력기를 몇자 적어보려 한다.

음악을 처음에 듣기 시작한 것은 1990년 경이다. 중학교 2학년때부터 듣기 시작했는데 메탈리카의 Metallica 앨범이 91년에 나왔고 그 때가 나 중3때였으니까 맞을거다. 제일 처음 샀던 테이프는 친구가 마음에 안들면 공테이프로 쓰라고 팔았던 메탈리카의 Master of Puppets의 테이프로 성음에서 발매된 것이었다. 그 때 이후로 열심히 라이센스 테이프들을 사서 주로 빌보드 히트곡들을 들었다.

LP를 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테이프의 음질이 너무 나쁜데 LP와 테이프의 가격차이가 1000원밖에 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했을 시점이었다. 당시 테이프는 2000~2500원, LP는 3500원 정도 했던 기억이 난다. 가장 처음에 산 LP는 스티비 비의 Love and Emotion이었다. 언젠가부터 빌보드는 대략 졸업하고 주로 메탈을 듣기 시작했는데 너바나의 Nevermind가 발매되는 날 판가게로 열심히 뛰어가서 샀던 기억이 난다. 마이클 잭슨의 Dangerous는 2LP라서 값도 두배인지라 아 저걸 살까 말까 고민했던 기억도 나고 마일즈 데이비스의 Bitches Brew는 너무 난해한 주제에 2LP여서 본전생각이 났더랬다. 어쨌든 내가 마음을 준 첫 매체는 단연 LP였다.

라디오는 거의 듣지 않았다. 전영혁이나 배철수를 가끔 듣긴 했지만, 내가 곡을 선택할 수 없다는 점이 싫었던게 아닌가 싶다. 나는 지금도 라디오를 거의 듣지 않는다. 가끔 아무 생각없이 AOL 라디오의 채널을 선택해 둘 때가 있는데 그럴 때 뿐이다. 빽판도 나는 거의 막차였다. 빽판까지 듣지 않아도 열심히 고르면 라이센스 LP 중에서 들을만한 것이 꽤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빽판까지 들어야 할 정도로 내공이 당시 있었던 것도 아니다. 레코드점에서 불법으로 테이프에 녹음해서 듣는 경우가 가끔 있었는데 그건 좀 아니다 싶어서 한두번 하다가 말았다. 건즈 앤 로지스의 Use Your Illusion I의 금지곡 덕에 녹음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나는 프로그레시브 락은 몰랐다. 난 메탈 아니면 음악이 아닌 줄 알았다.

CD를 살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익스트림의 Pornograffitti 때문이었다. 금지곡이 많았는데 영 라이센스도 안나오고 제대로 구할 루트가 없었다. 한 장에 15000원 정도 했으니까 LP 4장 이상의 값이다. 아 정말 그때부터 CD는 나름 비호감 매체였다. 나는 LP에서 CD로 옮겨가면서 가격이 그렇게 올라간 것은 업계의 음모라고 본다. 유통비와 매체비 모두 LP가 CD보다 비싸면 비쌌지 쌀 리가 없다는 것은 중딩도 계산할 수 있었다. 결국 그때 CD같이 정성이 부족한 매체로 가격만 올려놓은 탓에 지금처럼 CD는 멋이 없는 매체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CD가 LP의 우아함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었다면 지금처럼 CD가 디지털 음원에 급격하게 밀리진 않았을 것이다. 말이 돌았는데 대학생이 되면서부터 CD와 LP의 구매 비율은 비슷해졌다. 구매력도 생겼기 때문이고 LP의 생산이 줄었기 때문이다. MD는 거의 듣지 않았다. CD를 굳이 녹음까지 해서 들어야 하는 요상한 매체였고, 나는 이미 타인의 CD를 빌려서 녹음하는 것으로는 도저히 욕망을 채울 수 없는 꼬마 수집가였다. 일본 친구가 가끔 MD에 드림 씨어터의 부틀랙 이런 것을 녹음해서 보내준지라 그런 것들을 가끔 듣긴 했다.

CD계에 하나의 혁명이 있었다면 그것은 CD라이터의 등장이었다. 오만 어두운 컨텐츠가 라이터를 통해 구워졌지만 우리는 지인들의 CD를 빌려서 구워들을 수 있다는 것에 흥분했다. 가끔 모여서 CD도 굽고 부클릿도 칼라복사까지 하면서 야매 CD를 만들었다. 그리고 다들 머잖아 그것이 허무하다는 것을 발견한다. 구운 CD는 잘 안듣게 되더라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그 덕에 난 아직 구운 CD를 수십장 가지고 있다.

내 음악 매체 편력의 근대를 여기까지라고 해서 정산해보면 난 1990년부터 2005년 정도까지 대략 15년간을 주로 오프라인 매체를 통해 음악을 들어왔으며 그 15년간 대략 7-8000장 정도의 음악을 들은 것 같고 지금은 CD와 LP가 각각 1500-2000장 정도 되는 것 같다. 어지간한 사람이 평생 지출할 컨텐츠 비용을 압축적으로 지불했다고 봐도 좋을거다.

2. 현대?

mp3를 처음 들었던 것은 아마 학교 내에 있는 불법 AOD 서버 덕분이었을 거다. 히트곡을 모아서 내부에 서비스하는 불법 서버가 있었다. 아무래도 쉽게 음악을 접할 수 있었으니까 좋았다. 그 당시 내가 mp3에 집착했던 것은 에이펙스 트윈 때문이었다. 당시 어떤 AOD 서버에 에이펙스 트윈의 음반 대부분이 있었다. 국내에서는 고작 ...I care because you do 정도를 구할 수 있을 뿐이었고 그것도 근 2만원 돈을 주어야 살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AOD 서버에서 계속 짤려나가면서도 계속 시도하는 프로그램을 이용해 열심히 다운받았다. 이후 당나귀니 오디오 갤럭시니 소리바다니 하는 스토리는 굳이 적지 않아도 다들 아시리라. 그중 오디오 갤럭시는 잊을 수 없는데, 나는 그 서비스를 통해 데이빗 실비언의 음원 대부분을 들어볼 수 있었다. 나는 약간 전작주의자 성향이 있기 때문에 마음에 드는 뮤지션을 만나면 그의 데모 테이프부터 근작까지 일단 섭렵하는 스타일로 음악을 듣는다. 가끔 레어한 음원을 찾으면 기분이 참 좋았다. 물론 그 순간 뿐이었지만. 마치 택배를 뜯는 기분처럼 말이다. 택배가 오기 전까지는 설레지만 한번 뜯고 CD를 듣고나면 금방 식어버리는 그 허무한 쾌감.

mp3도 CD에 구워서 보관했다. mp3는 아마 구운 CD로 2-300장은 있을거다. mp3 굽기는 오래 가지 않았다. 하드값이 점점 내려가면서 급기야 동일용량 대비 하드가격이 공 CD 가격보다 떨어졌다. 지금은 500기가 하드 너댓게에 mp3가 가득 들어있다.

이쯤되면 문제의 양상은 조금 달라지게 된다. mp3를 정리조차 할 수가 없게 된다. 한때는 엑셀에 어떤 앨범이 몇번 CD에 있는지 정리해두고 검색을 했었다. CD 안의 파일 정보만 모아서 개인 PC에서 DB처럼 쓸 수 있게 만드는 프로그램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시점이 넘어가면 그 짓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지금은 ABC 순서대로 된 것도 있고 장르별로 된 것도 있고 뭐랄까 mp3 정리 상태가 영 개판이다. 이제 대충 포기했다.

mp3가 되면서 달라지는 양상은 사실 한두가지가 아니다. 하드 용량과 네트워크 비용이 싸지면서 점차 고음질로 압축한 것을 듣게 된다. 머잖아 무손실 압축인 flac 파일이나 ape 파일이 대세가 될 것이다. 다운받아 듣는 주제에 음질에 계속 신경을 써가면서 다운받는 웃기는 사태가 발생하는거다. 그리고 mp3에는 음반에 적혀있는 정보가 거의 없다. 따라서 음반을 읽으면서 그 안에 있는 정보를 습득하거나 사진을 감상하는 행위가 원천봉쇄된다. 아니 매체를 만지는 행위 자체가 없어진다. 그것은 음반이 주던 공감각적인 정보와 쾌감이 없어진다는 것을 뜻한다. 사실 이건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다. LP에서 CD로 옮겨가면서 바로 이 부분이 사라진 것인데 mp3로 가면서 그 부분이 더욱 거세되었기 때문이다. 음악듣기라는 총체적인 행위에서 음반이라는 부분이 없어지는 것이고, 아직도 mp3를 거부하는 소수의 사람들은 바로 이 부분에서 저항중인 것이라고 봐도 될 정도이다.

mp3의 보편화로 발생한 가장 근본적인 변화는 바로 조급해진다는 점이다. 테이프와 LP의 공통점이 있었다면 바로 갈아끼웠어야 했다는 점이다. 특히 테이프는 1번 곡부터 꼼짝없이 다 들어야 했고, LP는 곡단위 이동은 가능했지만 상당히 귀찮았다. 따라서 A면, B면 전체를 듣는다는 행위는 유지되었고 따라서 앨범을 듣는다는 행위가 심리적인 것 뿐만 아니라 물리적으로 성립할 수 있었다. CD는 A면 B면의 구분도 없어지고 트랙간의 이동도 비교적 쉬운 편이었지만 리모컨을 찾아서 누르거나 버튼을 여러번 눌러 트랙을 넘겨야 한다는 최후의 보루가 남아있었다. 하지만 PC에서 mp3를 들으면 그런 장벽이 완전히 사라진다. 헤드폰을 꼽고 듣다가 갑자기 다른 앨범이나 다른 곡으로 넘기는게 클릭질 한번이면 된다. 앨범을 처음부터 끝까지 듣는다는 차분한 행위 자체가 쉽지 않아졌다.

사실 A면 B면이라는 구분은 그리 단순한 것이 아니다. 20~25분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적절한 단위인지 증명한 글을 읽은 적은 없지만 나는 A면 듣고 B면 듣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25분 정도면 지루하지도 않고 짧지도 않은 적당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전영혁은 마음놓고 라디오 DJ 주제에 한 면 전곡 감상이라는 과격한 행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뮤지션은 앨범을 만들면서 LP의 시간 구분을 의식하면서 만들었다. LP시대에 나온 앨범을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 생각없이 CD로 듣는 것과 A면 B면을 의식하면서 LP를 뒤집어가며 듣는 것은 꽤 다른 감상을 준다. 그건 뮤지션의 의도가 LP에 준하여 반영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40분~75분이라는 CD의 길이는 한번에 듣기 쉽지 않다. 다르게 표현하면 인간적이지 않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낀다. 앨범의 길이가 길면 만드는 뮤지션도 힘드니까 예전같았으면 잘랐을 곡(filler)들도 채워넣고 해서 결국 음반의 밀도도 떨어지고 뭐 그런 악순환이 발생한다. 내 생각에 CD라는 매체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만든 대표적 앨범으로 로저 워터스의 Amused to Death가 있는데 이 앨범은 상당히 훌륭한데도 불구하고 솔직히 처음부터 끝까지 듣기가 영 쉽지 않다.

이 상황은 mp3로 들어오면서 더욱 악화되었다. PC상의 플레이어에 곡을 넣고 넘기고 하는 것이 너무나 쉬워진 나머지 듣다가 여차하면 다른 트랙으로 넘어가는 일이 다반사이다. 끝까지 참을성있게 곡을 듣는 경우가 예전에 비해 많이 줄어들었다. 특히 10~20분쯤 되는 트랙들은 듣다가 끝까지 못듣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건 하드에 있는 mp3를 들을 때도 그랬지만 웹상의 AOD 서비스를 들을 때 더욱 그러한 듯 하다. 마치 듣는 것 보다 찾는 행위에 더 집착하는 것 같다. 뭔가 한 곡을 듣다보면 다른 음악이 생각나고 그걸 찾아서 듣는 동시에 또 다른 음악을 찾는 것이다. 이쯤되면 조급증과 집착이라는 표현을 써도 전혀 어색하지가 않다.

디지털 다운로드만으로 출시되는 음반들도 늘어나기 시작했는데 매싱 펌킨스의 Rarities and B-Sides같은 경우는 114트랙이고 8시간 10분짜리 박스셋이다. 이게 디지털로만 발매되어 매체 구분 없이 트랙 번호만 쭈르륵 달려있다. 이쯤되면 뭔가 단위를 가진 음악 감상이 거의 불가능해진다. 폴더라도 나누어서 Gish Days, Siamese Days 이런 식으로 시기를 좀 구분해주어야 감상이 가능할텐데 말이다. 사실 이건 기존의 많은 컴필레이션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산울림의 초기 8장짜리 전작 박스셋은 앨범의 형식을 파괴하면서까지 곡들을 우겨넣었다. CD1에 1집 + 2집의 A면, CD2에 2집의 B면 + 3집, ... 이런 식이었던게다. 원래의 창작의도까지 훼손하는 컴필레이션이라니 이런 것은 좀 아니지 않나 싶었는데 요즘 나오는 컴필레이션은 나날이 그 정도가 심해진다.

그리고 다품종 소량생산 시대가 되어 그런가 하루가 멀다하고 발매되는 재발매 음반과 라이브 음원들은 이제 거의 따라갈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킹 크림즌의 미공개 라이브 음원들은 현재 DGMlive 사이트에서 170여종이 mp3로 다운로드 가능하고 이중 40여종은 CD로 발매된 상태이다. 그래도 킹 크림즌은 40년간의 음원이니까 나름 양반이다. 잼의 오피셜 부틀랙 시리즈는 현재 260종이 나와있다. 2000년부터 2008년까지의 라이브 음원 대부분이 CD로 발매된 셈이다. 지미 헨드릭스는 제대로 활동한 것이 고작 3-4년인데 지금까지도 계속 음원이 나오고 있고 프랭크 자파는 7-80종의 공식적인 앨범을 내놓고 죽었지만 (그리고 죽은 다음에도 미공개 음원이 계속 발매되고 있지만!) 요즘 뮤지션들의 라이브 재발매 현황은 정말 해도 너무한다는 기분까지 들 정도이다.

이런 무차별적인 음원 출시 붐은 사실 인터넷 시대의 mp3 범람 현상과 분명 관계가 있다. 프랭크 자파는 1991년에 Beat the Boots라는 이름으로 이미 오피셜 부틀랙 박스셋을 발매해 여기서도 선구적 업적(?)을 남겼는데 이제 mp3 덕에 수많은 부틀랙들이 전지구적으로 유통되고 있는지라 뮤지션들로서는 그에 대한 공식적인 대응이 필요했나보다. 그런 붐에 힘입어 헨리 카우같은 정말 듣는 이 없는 밴드도 10장짜리 미공개 라이브 모음집을 낼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되어 음반의 형식은 나날이 복잡해지고 있다. 예전에는 LP/EP/싱글 이정도였는데 요새는 LP/EP/싱글/비공식 라이브/리믹스/아웃테이크 등 난리 부르스 수준이다.

3. 포스트 모던?

지금 내가 mp3로 음원 구하는 경로를 공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1) what.cd와 같은 폐쇄형 토런트 음원 공유 커뮤니티
 2) 음악 동호회의 자료실
 3) rapidshare와 megaupload와 같은 다운로드 서비스를 링크하고 있는 블로그 검색
 4) spotify와 같은 AOD 서비스

여기를 훑으면 솔직히 말해 구하지 못할 음원이 별로 없을 정도이다. 찾는 시간이 좀 걸리고 들을 시간이 없는게 문제인거지 이미 음원의 한계는 없어졌다고 봐야 한다. 예전엔 참으로 강렬하게 가졌던 아 저 명반 한번 듣고싶다...이런 욕구는 어지간하면 해소가 된다는 뜻이다. 잘 못구하겠으면 음악 동호회에 가서 듣고싶어요~ 하고 부탁 한번만 해도 어지간한 것은 서로 구해서 돌려준다. 내가 음반보다 이런 디지털 음원으로 더 많은 음악을 듣게 된 것은 최근 2년 정도 사이의 변화이다. mp3가 너무 많아졌다는 것과 내가 들고다니던 휴대용 CDP가 더이상 생산이 안되거나 생산되더라도 너무 쉽게 고장나게 되었다는 것이 중첩되어 벌어진 일이다.

이렇게 구구절절 나의 음악 매체 편력기를 적은 이유는 단순하다. 내가 음악을 열심히 들어온 것이 이제 20년이 다 되어가는데 지금까지처럼 어지러웠던 시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최소한 CD시대까지만 하더라도 그냥 평화롭게 듣고 마음에 안들면 장터에 가서 내다 팔기만 하면 되었다. 음악도 내가 소화가능한 수준만 공급되었고 내가 찾기위해 충분히 노력을 하지 않는 한 그 음악들이 스스로 다가와서 나를 귀찮게 굴지는 않았다. 그런데 요즘에는 만지는 즐거움이 없어졌고, 매체가 주는 정보량 자체는 많아진듯 하면서도 부실해졌고, 들어야 할 음악은 너무 많고, 새로운 음악들이 너무 많이 나오고, 정리는 잘 안되는 등 나를 어지럽게 할 뿐만 아니라 나로 하여금 많은 노력을 하게 만들고 있다. 음악계도 자본의 속도 만큼이나 변화가 빨라지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나는 지금 음악 팬이기도 하지만 음악 서비스에 일부 개입되어 있기도 하니 내맘대로 예측해본다. 점차 무손실 음원이 더 많이 유통될 것은 기정 사실이고, 웹 상에 음반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는 가득 차게 될 것이다. CD가 금새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기본적으로 다품종 소량생산의 길로 들어선 것은 사실이라 발매 후에 얼른 사지 않으면 절판되는 것이 많아질 것이다. 온라인으로만 유통되는 음원도 많아질 것이다. 무료 AOD 서비스는 확실히 늘어갈 것이며 그 주력 비즈니스 모델은 일단 광고일 것이다. 라디오 광고같은 것을 곡과 곡 사이에 삽입하거나 아니면 플레이어 옆에 배너광고 같은 것이 도는 것은 전통적인 광고모델이고 구색을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곡 자체를 듣게 만드는 것이 프로모션으로 정착할 수도 있다. 까페/블로그의 BGM은 한동안 주된 음원 수익 모델일 것이고 합법적 mp3 다운로드 시장이 성장할 것도 맞는 듯 하다. 대신 유통업체가 저작권 문제를 비교적 산뜻하게 해결하고 음원 커버리지를 늘리지 않으면 안된다. 사용자들에게 음악을 찾아 헤매는 수고를 덜어주는 것도 무척이나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스포티파이의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무척 고무적이다.

음반쪽은 어떨까. 기본적으로 양극화가 될 것이라 가정하면 mp3 다운로드나 AOD가 가장 싼 가격에 속할 것이므로 비싼 것은 스페셜 패키지나 한정판 같은 형태가 좀 더 정착할 가능성이 높다. 공연+음반, mp3+음반 등과 같은 복합 상품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 15년 전에 나왔던 CD 중 상당수가 부식되어가고 있어 문제가 좀 있는 상황인데, 그런 것들에 대한 합리적인 AS가 가능한 형태의 상품이 나올 수도 있겠다. 사실 나는 이미 음반이 필수재(소비재?)가 아니라 사치재로 전환된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즉 스페셜 패키지로 가는 것이 정상이라는 말이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미친듯 비싼 십만원대의 음반이 나와야 한다는 생각은 아니고 mp3로는 채워지지 않는 형태의 정성이 투영된, 적어도 LP시절의 우아함 비슷한 것이라도 담기지 않는 한 팔릴 이유가 없다고 본다.

먼저 왜 음악시장이 지금처럼 변화되었는가를 고민해봐야 한다. 사실 음악시장은 원래 음반 위주가 아니라 공연 위주였다. 그러다가 SP, single, EP. LP. CD로 매체가 발전하면서 급격하게 성장해 80년대부터 90년대 중반까지 음악산업의 주요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인터넷과 mp3가 보편화되는 과정에서 음악업계는 매체에 대한 특성을 파악하는데 실패하고 DRM을 통한 통제를 시도하여 결국 음반시장이 디지털 음원시장으로 적절히 이동되지 못했다. 현재 디지털 음원시장은 벨소리, 컬러링, 까페/블로그의 BGM 등으로 나뉘어있는데 이것이 얼마나 안정적인 시장으로 정착할 것인지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mp3 다운로드 시장도 마찬가지다. 프린스라디오헤드같은 몇몇 뮤지션들은 음반은 음악의 홍보 매체로 활용하고 주된 수익은 공연으로 내려는 전략을 시도하고 있다.

좀 더 거시적인 형태의 비전이 담길 수도 있다. 예를들어 음악 자체가 아예 공공재화 하여 TV 수신료같은 것을 받는 대신 누구나 어떤 음악이든 들을 수 있는 형태가 되는 것이다. 돈은 플레이된 횟수를 카운트하여 n으로 나누되 최대값과 최소값을 규정하는 식으로 분배가 가능할 수 있다. 또 다른 형태를 생각해본다면 음반을 살 수 있는 쿠폰 10만원권을 살 경우 잡지와 AOD 6개월 이용권을 주는 것이다. 잡지는 음반 유통을 촉진시킨다는 점에서 상당히 의미가 있는 매체인데 지금 한국의 음악 잡지는 거의 고사상태로 가고있다. 그리고 AOD를 통해 충분히 들어본 다음 10만원 쿠폰으로 음반을 사게 한다면 사람들이 죄의식을 가지지 않고 음악을 충실히 소비할 수 있게 만들 것이다.

음악산업이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을 때를 기억해볼 필요가 있다. 공연, 음반, 잡지, 방송 등이 유기적으로 엮였을 때 음악산업은 막대한 수익을 만들 수 있었다. 지금은 이전의 요소들에 새로 생긴 mp3, 유튜브, 블로그, 까페 등이 더 있다. 새로운 요소들이 옛 요소들을 마냥 잠식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보완하게 할 수 있을까, 해결책은 거기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음악 청자들이 존재한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범법자로 몰지 말고, 그들이 음악을 충분히 즐기면서 대가를 지불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예전처럼 대박을 기대하지 말고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한다는 느낌으로 시장을 새로 만들어나가야 한다. 역시 핵심은 성의이다. 먼저 업자들부터 성의를 보여야 한다. 지갑이 열리는 것은 그 이후이다.

-- 거북이 2009-3-5 12:27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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