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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훈   (8725032 )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 음반평.              1996-03-10 01:29   225 line

정말 간만에 글을 써 봅니다. 
그동안 음반은 퍽 많이 들어보았는데, 별로 글쓰고 싶지 않아 기회가 
없었군요. 마음이 내키고 시간이 나는대로 게시판에 음반평을 써보도록
노력하겠읍니다. 
오늘은 여러분들이 애호하는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 음반평으로 곡에
대한 해설은 생략하였으며, 제가 들어본 판은 30종 가량으로 추산하는데
지면관계상 열 서너 종류만 녹음 데이타와 함께 언급해 보며, 나머지 음
반은 간단한 소개에 그칠까 합니다. 여기 연주의 우수성을 평가하기 위
해 쓰인 * 표시는 단순한 주관적인 판단에 근거한 자료입니다.
 
()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 - 뉴욕 스테디움 심포니 오케스트라 
   1958년 녹음, 일본 PHILIPS
   15:55, 5:04, 12:31, 10:45
현재 필립스에 남아있는 ('94년 슈반 카타로그 기준) 스토코프스키의 유
일한 현역판으로 기억되는 이 음반은 SP시대에 동곡 최초의 음반으로 기
억될만한 유명한 '39년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펄 녹음 이후 공식적인
기록. 스토코프스키의 전성기 시절답지 않게 악보를 주관적으로 변형시
키지 않았으며, 아주 클래식한 범주의 형태를 고스란히 담은 즉물적인 성
향의 연주. 뉴욕 필하모닉 단원들이 주축이 되어 급조된 스테디움 오케스
트라의 분전이 놀라운데, 아다지오 악장에 어둠과 시름에 가득찬 현악기
들의 섬세한 톤과 음영의 대조는 백미. 커플링된 스크리아빈의 법열의 
시는 스토코프스키의 특유의 자의적인 표현방법이 드러나 앞곡과 대조.  
솔직히 필자는 스토코프스키의 지휘 음반을 아주 싫어하는 편인데, 
(웬지 머리가 뜬 그의 사진을 보면 스트리트 파이터의 블랑카의 모습이
떠오르는 악연 탓인지) 이 음반 1장과 죽기일보전 CBS 에 남긴 비제 
교향곡 및 관현악곡집, 멘델스존 심포니 4번 등은 반드시 듣고 넘어갈 
만한 수연으로 추천. 64년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판도 또한
참조할 만한 연주지만 필립스의 스테레오 초기 음질에 크게 못미치는 
것이 한계.   
     (지휘자) *****  (오케스트라) ****  (음질) **** 

() 레너드 번스타인 -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959년 10월 보스톤 심포니 홀 녹음, SONY 
   16:13, 4:54, 15:33, 8:55
   1979년 7월 도쿄 문화성 라이브녹음, SONY 
   17:40, 5:20, 15:58, 10:10 
번스타인의 쇼스타코비치 5번은 20년의 격차를 두고 녹음했으면서도, 그
의 자유분방한 개성이나 궤변적인 어조가 너무 두드러진 탓에 자신만의       
확고한 세계를 창조. 두 음반 모두 엄청난 스케일이나 싱싱한 에스프리가
전면에 부각되고 있지만, 후자는 프레이징의 정밀도와 독보력의 향상으로
치밀하고 웅혼한 연주. 59년 음반은 종악장이 지나치게 광적인 템포로 
밀어붙인 느낌이 드는 반면, 말기 녹음은 좀더 여유있는 뒷힘이 인상적. 
다양한 타악기의 스코어가 복잡하게 짜여진 말러 연주때와 마찬가지로 
타악기를 정말 잘 다루는 번스타인의 타고난 감각과 재치에 경의를 표해
야 할 듯.  
작년에 '79년 녹음이 클래식 CD의 초이스 코너에서 최고 음반으로 선정된
(도쿄의 지진을 촉진했다고 평할 만큼 웃긴 어조로 비유) 것으로 뜻깊은
데, 이 음반은 번스타인과 뉴욕 필하모닉의 아시아 순방 연주회때 (불과 
바로 며칠전에 그의 내한이 있었음) 제작된 것으로 세종문화회관 라이브 
녹음이 남지 못한 것이 한. 또한 말년에 스케줄이 잡혀 있었던 빈 필하
모닉과의 쇼스타코비치 심포니 사이클도 급서로 물거품이 되어 아쉬움. 
      59년판:  (지휘자) ****  (오케스트라) ****  (음질) ***
      79년판:  (지휘자) *****  (오케스트라) ****  (음질) ****   

() 카렐 안체를 -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961년 드보르자크 홀 녹음, SUPRAPHON
오래된 녹음이면서도, 아직까지 카타로그 및 음반 평가기준에서 사라지지 
않는 안체를의 불멸의 유산으로 그의 녹음 다섯 손가락안에 들만한 음반. 
이외에 음반으로 쇼스타코비치 1,7,9번 등도 올드팬이라면 꼭 들을만한 
연주. 프라가의 안체를 콜렉션도 이 녹음과 똑같은 연주를 수록.  
오케스트라를 일사불란하게 조율하는 안체를의 카리스마도 드물게 보는
것이며, 슬라브 계열의 색채적인 작품에 놀라운 집착력과 응집력을 보여
주는 체코 필하모닉의 역량이 조화를 이룬 연주.   
시일의 불리한 여건을 감안해 볼때 음질은 약간 메마르고 평면적이지만,
해상도가 뚜렷하며 잔향이 풍부한 점이 강점. 
클래식 CD 에서 full STAR ***** 로 칭송.   
       (지휘자) *****  (오케스트라) *****  (음질) ***

() 키릴 콘드라신 - 모스크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녹음연대 불명, EURODISC 
   13:40, 5:15, 12:13, 10:47
콘드라신의 서방망명에 앞서 일찍 멜로디아 전집을 완성한 음반중 1매로,
그는 쇼스타코비치를 자주 연주했지만 (프라가나 필립스의 라이브 녹음) 
골수 음반비평가들로부터 수많은 독설을 받았으며, 감정의 변화와 폭의 
깊이를 의미없이 전개한 5번도 별다른 인상을 심어주지 못한 졸연.   
빠른 템포로 오케스트라의 비르투오적인 면을 강조했지만, 모스크바의 현
은 앙상블이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았으며, 관악기군의 억양은 촌스러운
비브라토로 얼룩진 것이 특색. 강렬한 러시아적 체취를 특별히 좋아하는
분에게 추천. 
제가 소장한 음반은 LP인데, CD를 원하는 분은 프랑스 LE CHANT DU MONDE
레이블에서 복각한 콘드라신의 쇼스타코비치 전집을 구하는 것이 좋을 듯. 
LP에서 듣던 음향의 드라이한 면은 많이 개선되었으나, 아무리 노력해도 
조잡한 멜로디아 녹음을 재생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음질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투티부분에서 자주 지끄러지는 단점이 발견. 
     (지휘자) ***   (오케스트라) ***   (음질) ** 

() 앙드레 프레빈 -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1977년 1월 녹음, EMI
   16:57, 4:55, 15:49, 9:57
'60년대 중반 런던 심포니와 RCA 녹음이후 2번째 녹음. 솔티의 포디움인 
시카고 메디나 템플 홀에서 세션은 5번 교향곡 명연주의 판도를 소련에서
미국으로 가져가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키도 했는데, 프레빈은 필요이상의 
주장이나 통솔력을 발휘하지 않고, 악기 파트별의 기량과 개개인 솔로의 
역량이 마음껏 뽐내는 시카고 오케스트라의 기능미를 한껏 살리는데 성공.
한편으로 외향적인 화려함만으로 흐르지 않는 프레빈의 젠틀하고 점잖은 
이미지, 악보의 의미를 거듭 되새기는 조심스런 심사숙고가 보태져서 이상
향을 추구한 연주. 한때 오아시스에서 국내 EMI판을 제작할 당시부터 소개
되어 호평을 받은 연주. 5번 교향곡 전형의 교과서적인 규범으로 평가. 
    (지휘자) ****  (오케스트라) ****  (음질) ****

() 에프게니 므라빈스키 -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978년 6월 빈 뮤지크페라인 홀 라이브 녹음, MELODIYA
   14:35, 4:48, 12:25, 10:19
므라빈스키는 1937년 동곡을 레닌그라드에서 초연한 지휘자로 죽을때까지 
쇼스타코비치 권위자란 닉네임이 따라 다닐정도로 장기로 삼던 레퍼토리. 
현재에 카타로그에 남아있는 것만 해도 러시안 디스크의 66년, 68년 녹음
두 종류와 에라토의 84년 녹음 등이 막상막하의 경합을 벌이는 연주.
에라토 음반이 팽팽한 긴장력이나 오케스트라와 완벽한 일체감을 지닌 면
에서 설득력이 뛰어난 편이나 자기주장과 과시적인 부풀림이 강조된 편이
라 좀더 객관적이고 순수한 해석이 돋보이는 78년 음반을 더 좋은 수작으
로 추천.    
몇년전에 멜로디아 녹음들이 국내에 보급되지 않았을때 당시 초창기에 소
개되어 국내 음악팬들이 무척 반가워했던 음반으로 예전이나 지금이나 언
제들어도 싫증이 느껴지지 않으며, 고개가 절로 숙여지는 불후의 명반.  
     (지휘자) *****   (오케스트라) *****  (음질) ****

() 로린 마젤 -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1981년 4월 녹음, TELARC 
   17:56, 4:58, 14:28, 9:21 
마젤은 텔락에서 러시아 작곡가 교향곡을 퍽 잘 연주했지만 (림스키 코르
사코프나 차이코프스키 등등), 쇼스타코비치 5번은 오케스트라의 음향이 
지나치게 밝고, 무게가 없으며, 마젤은 심각한 쇼스타코비치의 비극을 우
회적이고 가볍게 표현함으로써 고난을 극복한 승리라는 원주제에 걸맞지 
않는 듯한 일면을 드러냄. 과거 동콤비의 프로코피에프 5번을 처음 들었
을때 유사한 악몽이 떠오르며, 들을때는 특별히 좋은 점도 나쁜 점도 
발견하기 어렵지만, 어딘지 뒷여운과 감흥이 전혀 남지 않는 듯한 인상. 
음향이 맑고 깨끗해 첼레스타나 탐탐 등이 여린 소리가 이례적으로 잘 들
리나 오케스트라 투티에 다이나믹의 폭은 적은편. 
예전에 이 한곡만으로 full price 였지만,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포함한 80분을 넘기는 염가판인 텔락의 부라보 시리즈로 재출반. 
   (지휘자) ****  (오케스트라) ***  (음질) ****   

() 쿠르트 잔데를링크 - 베를린 심포니 오케스트라 
   1982년 1월 베를린 예수 크리스트 교회녹음, Berlin Classics
   17:36, 5:31, 15:32, 11:49 
베를린 클래식스에서 재작년에 잇달아 출반된 잔데를링크의 쇼스타코비치
목록은 1,6,5,8,10,15번등이 있는데, 장기간 소련체류에 따른 므라빈스키의
영향과 레닌그라드 필을 통해 얻은 쇼스타코비치의 영감을 십분발휘한 명연
으로 간주되며, 특히 5번은 동베를린 초연 지휘와 연주회에서 무려 65회 이
상 채택한 그가 장기로 삼는 곡목. 
작곡자의 복잡한 내면을 심층적으로 파헤쳐 들어간 깊이가 내재된 것으로 
느린 템포의 연주지만, 거대한 건축물을 쌓아 올리는 듯한 강인한 구축력과 
풍부한 감정이 넘실대는 연주로 별로 지루하다거나 느리다는 느낌이 없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 커플링이 없는 것이 불만이고, 80년대 녹음이면서
도 어찌된 연유인지 디지틀 녹음이 아님. 국내에 베를린 클래식 수입상이
게으른 탓인지 그의 쇼스타코비치는 거의 배포되지 않은 탓에 외국에 다녀
오는 분이나 인터넷 메일오더를 통해 구하는 것이 바람직할 듯. 
      (지휘자) *****  (오케스트라) ****  (음질) ****

() 앙리크 바티즈 -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989년 성피터 교회녹음, ASV 
   16:46, 5:17, 13:49, 10:54 
멕시코 지휘자 바티즈의 녹음은 대부분 영국의 염가판 ASV 레이블에서 출반
되어 베스트셀러 기억되는 녹음이 다수 있는데, 이 쇼스타코비치 음반도 정
열적인 리듬감과 이성적인 감정이 멋진 밸런스로 맞추어진 것으로 어느 명연
에도 뒤지지 않는 거장풍의 해석이 돋보이는 음반. 
로열 필 특유의 현악기군의 중후한 울림과 극히 투명하고 정제된 관악기 솔
로의 브라부라 효과가 빛나는 음반.
다른 지휘자와 차별화가 가능한 뚜렷한 개성은 없지만, 초보자가 듣기 쉽게 
작품의 구석구석을 촘촘하고 꽉차게 연주한 음반.     
러시아와 키르키스 주제에 의한 서곡, 교향시 10월 등 자주 연주되지 않는 
서곡을 커플링하여 전편이 76분이 넘는 보너스가 푸짐한 편.  
       (지휘자) ****  (오케스트라) ****  (음질) ****

() 엘리아후 인발 - 빈 심포니 오케스트라 
   1990년 11월 빈 콘체르트하우스 녹음, DENON
   16:53, 5:18, 14:37, 11:29 
말러와 브루크너 교향곡 전곡 녹음에 이어 인발의 3번째 대형 프로젝트인
쇼스타코비치 사이클은 시작당시부터 이만저만 실패를 보고 있지 않은데, 
현재까지 전곡 녹음에 과감히 도전하지 못하고 지리하게 뭉기적대는 것도
자신감이 없는 측면. 인발은 헝가리 및 슬라브의 정서, 고전적인 정통을
두루 갖춘 빈 심포니가 쇼스타코비치를 연주하기 적합해 파트너로 택했다
고 말하지만, 너무나도 보수적인 음향에 열띤 생기가 없어 어딘지 싱겁다
는 느낌. 첫악장에 저음 현악기와 고음 현악기의 옥타브가 얽히는 제 1주
제부터 힘없이 풀어진 나른함에 실망을 금할 수 없는데, 끝까지 이런 낯선
분위기를 반전시킬만한 그 어떤 번뜩이는 감각이나 요소를 찾아볼 수 없어
갈수록 들으면 스트레스가 쌓이는 연주로 점점 의문만 더해 가는 연주.  
예전에 이 녹음을 처음 들었을때 떠오른 단 한마디 "아! 세상에 이런 연
주도 있을 수 있구나!"   
이 녹음의 유일한 장점은 악보와 대조하기 쉽게 중요한 구분점마다 인덱
스를 붙여 트레이스 기능을 제공한 점.
최근들어 발표한 인발의 쇼스타코비치 심포니는 외지에서 이외의 호평을 
얻고 있어 차후를 주목. 
      (지휘자) *   (오케스트라) **   (음질) ****

() 블라디미르 폐도세예프 - 모스크바 방송 교향악단 
    1991년 8월 모스크바 방송 홀 녹음, 일본 VICTOR
    16:47, 5:04, 14:40, 10:42
80년대말부터 서방 음악제에 본격적으로 진출하여 센셔이널한 평판을 끌어
낸 소련 지휘계의 호프인 페도세에프의 역작.    
에네르기가 넘치는 육중한 금관악기군, 선이 가늘지만 합쳐지면 음향이 배
가 되는 현악기군, 교묘하고 투명한 관악기군 등의 울림은 실로 눈부시며,
오케스트레이션의 찬란한 울림을 예리하게 포착해낸 면에서 오디오 파일
측면에서 가장 성공.   
특히 첫악장에 전개부에 피아노의 반주위에 행진곡이 진행되는 패세지에서
트롬본의 풍성한 울림, 4악장에 팀파니의 강타와 금관의 스텍터클한 합주는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부분.
일본 빅터는 이 녹음 세션당시 공산 독재의 재등장에 반대하는 러시아 민중
혁명으로 방송국이 탱크에 의해 점령되고 군인들이 통제때문에 흡사 볼세
비키 혁명을 연상시키는 절박한 상태에서 힘들게 제작된 녹음임을 들어 
생색을 내는데, 이 곡에 얽힌 내용과 우연치고는 묘한 인연.    
      (지휘자) ****  (오케스트라) *****  (음질) ***** 

이외에도 작년 출반된 뒤트와 몬트리올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회심작인 데
카판, 아슈케나지의 정성이 깃든 로열 필하모닉과 데카판, 스케일이 크고
심원한 로스트로포비치와 내셔널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신구 녹음인 DG, 
TELDEC 신반, 녹음 효과부문면에서 비평가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하이팅크
와 콘서트헤보우 오케스트라의 데카판, 솔티와 빈 필하모닉의 데카판, 쇼
스타코비치 아들인 막심과 런던 심포니가 연주한 콜린스판, 로제스트벤스
키와 소련 국립 문화성 오케스트라의 멜로디아 및 유로디스크 전집 중 
낱장이 추천할만하며, 구입에 주의해야할 판으로 러시아 지휘자답지 않은
유리 아로노비치와 스톡홀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비스판, 스토코프스
키부터 오르만디까지 이 곡에 쌓아올린 필라델피아의 금자탑을 일순간에
허무하게 무너뜨린 무티의 졸반인 EMI판, 카라얀이 므라빈스키를 의식해
녹음하기 꺼려했던 5번을 후계자인 젊은 비쉬코프가 베를린 필하모닉을 
이끌어 무미건조한 허탈감을 남긴 필립스판 등이 기대이하의 연주. 
굳이 염가를 고집한다면 가격은 싸지만 연주는 퍽 훌륭한 낙소스의 라바
리의 연주를 권해드립니다.  
국내에 없지만 연주 기량이 뛰어나며 인터넷에서 가격이 8달러 미만인 
매케라즈와 로열 필하모닉, 스크로바체프스키의 재녹음인 할레 오케스트라
의 명판도 콜렉터 들이라면 한번쯤 관심을 둘만 합니다. 


      긴 글 다 읽느라 수고 많이 하셨읍니다....


 계속하시겠습니까? (Y/n) >> 


 박승철   (jhorner )
현대음악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1995-11-25 15:55   265 line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세계


  1926년 5월12일 지휘자 니콜라이 말코는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제1번
의 초연을 끝내고  나자, "교향곡의 역사의 새로운 1페이지를 넘긴  느낌
이 든다"고 말했다.  아마도 아직 나이 젊은 작곡가에게 용기를  줄 셈으
로 피력되었을 이 말은, 당시 20세였던  쇼스타코비치를 정확하게 파악한 
날카로운 통찰력에  가득찬 발언이었다.  그후 쇼스타코비치가  20세기의 
교향악에 바친 거대한  공헌을 틀림없이 설파한 것이다. 그는 창조에  골
몰하던 거의 어떤  시기에도 교향곡에 손을 대서 15곡을 완성했는데,  마
지막 것은 그가  세상을 뜨기 4년 전의 1971년에 쓰여졌다.  또한 교향곡
에 대한 쇼스타코비치의 몰입한 모습에는 그의 중요한  음악적 개성이 뚜
렷이 나타나 있다.  많은 주된 작곡가들이 지금까지 없었던 장르나  신기
한 표현을 추구하고  있던 시대에 쇼스타코비치는 자신의 최고의  음악을 
교향곡, 소나타, 현악4중주,  협주곡 등 전통적인 주형에 부어넣고  공적
으로나 사적으로나 자신을 표현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으로 삼았다.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1번에는  그 이전의 러시아음악의 여러가지  잔
상을 볼 수도 있다. 제2악장에서는 차이코프스키의  메아리가 들리고, 투
명하고  늠름한 오케스트레이션에는  림스키-코르샤코프와  글라주노프가 
암시되는가 하면 홀낏, 담장사이로 엿보이는 식의  들뜬 기분이며 아이러
니에서는 프로코피에프와의  거리의 가까움이  실감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인상보다도 훨씬  더 세차게 들려오는 것은 놀랄 만큼의  독창성, 
20세기 첫머리의 러시아에서 침체해서 막다른 골목에  빠져 있던, 교향곡
의 분야에 불어넣어진 청신한 생명이다. 이  교향곡은 또 쇼스타코비치의 
후기의 음악의  특징적인 오케스트라 파트의  전개, 자극성이 강한  하모
니, 굳건한 독자적인 구성 등이다.
  1920년대의 러시아에서는 혁명무드가  지배적인 가운데, 이 조류에  걸
맞는 표현을 추구하려고  많은 작곡가들은 혈안이 되어, 음악은 크게  두 
가지 경향으로 갈라졌다.  하나는 형식으로는 전통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 '프로레타리아'음악으로,  소련 프롤레타리아 음악협회(RAPM)의  지
지를 받는 측이요,  다른 하나의 그룹은 더 전위적으로 실험적인  작품을 
발표하고 현대음악협회(ASM)의 후원을 받는 측이다. 1920년대  후반에 쇼
스타코비치는 머뭇거리지 않고 급진적인 '현대음악파'에  가담했다. 소련
의 콘서트  홀이나 오페라하우스에서는  힌데민트, 쇤베르크, 베르크  등 
서방의 작곡가의 음악이  자주 연주되어 영향을 주고 있었다. 이  시기에 
쇼스타코비치의 창조력이  산출한 성과는 피아노소나타 제2번(1926),  간
결한  독주피아노를 위한  격언집(Aphorism,1927), 마야코프스키의  희곡 
'빈대(The Bedbug)'를  위한 부수음악(1929), 발레음악  '볼트(1930-1)', 
'황금시대(1927-30)', 그리고 무엇보다도 교향곡 제2번과 제3번은  이 시
대를 각인하고  있는 셈이어서  흥미롭다. 제2번엔 '10월에'라고  부제가 
붙어있고, 제3번은 '5월1일'에  봉정(捧呈)되어 있다. 혁명적 공감에  불
타올라, 러시아혁명은 축하해야 하고 감사해야 한다는  감정에 복받쳐 있
던 당시의 쇼스타코비치의 심정이 이 두 작품에 역력히  나타나 있다. 그
러나 이들 작품의  어느 쪽에도 RAPM을 지지하는 작곡가가 작곡한,  대중 
상대의 '프롤레타리아'적 음악에  으례 따라붙는 저 따분하고 열변의  홍
수와 같은 어법은  사용되고 있지 않았다. 그러기는 커녕 오히려  교향음
악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려는 시도의 구실을 하고 있다. 
  두 교향곡  모두 1악장으로  구성되며, 장대하고 추상적인  오케스트라 
연주가 계속되면서,  마지막에 합창으로  연결된다. 어느 쪽의  경우에도 
합창의 부분에서는 현대시인의  알기 쉬운 시가 노래 불려진다.  제2번에
는 알렉산더 베지멘스키의  시가 '새로운 시대의 여명'이 될  10월혁명에 
이르기 까지의 고투를 이야기해 주고 있다. 제3번의  시는 세묜 키르사노
프의 것으로, 장래의  공산국가의 기쁨을 명랑하게 표현하고 있다.  쇼스
타코비치는 교향곡 제2번의 숨박힐 만큼 농도짙은  복잡한 구성속에서 폴
리 리듬과 폴리  토날리티에 파고들어 날카롭고 새로운 감각과  오케스트
라의 현대적 용법을  타협없이 전개시켰다. 교향곡의 최초의 5분간에  들
려오는 광증(狂症)과도 같은  전개, 각 악기의 뿔뿔이 흐트러지는  흐름, 
현의 크레센도  등이 그 좋은 예이다.  제3번에서는 음이 서로  방해하는 
일이 드물고, 음악의  흐름도 평온하며 제1번에서 사용되었던 풍부한  리
듬과 기악적 효과가 다시 제시되어 오페라 <코>하고도  공통된 특징을 보
인다.
 <코>가 제작되기는 소련의  오페라음악이 맥없이 방황하고 있던  시기의 
일이었다. 1920년대의 러시아에는  우수한 재능을 지닌 극장지배인이  많
았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레퍼토리는  19세기의 고전에 치우쳐  있었다. 
상연해 볼 만한 신작은 좀체로 나오지않았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쇼스타
코비치는 신경지를 개척하였다. 어느 비평가는 이렇게  말한다. "그는 리
듬과 음만을 길잡이로  해서 가장 흥미로운 음악적 실험을 시도했다.  그
는 러시아의  오페라 작곡가중에서도, 흔해빠진 아리아나  칸틸레나(단순
하고 서정적인 노래)따위로 등장인물에게 말을 시키는게  아니라, 일상적
인 살아 있는 언어로 말하게 해서 음악에 일상회화를  도입한, 아마 최초
의 작곡가가  아닐까 한다." 이 '살아있는  언어로 말을 한다'는건  훨씬 
이전부터 러시아  가곡의 한  특징이었다. 1860년대에  다르고미시스키가 
자신의 오페라<석상의 나그네>에서 '음악 리얼리즘'을 제창하고  그걸 무
소르그스키가 <보리스고두노프>라든가  최성기의 가곡에서 발전시킨  '메
로디 레치타티보', 즉 음성의 움직임을 러시아의  일상언어에 밀착시키는 
작곡법이다. <코>안에서 쇼스타코비치는  이 원칙을 당시의 자신의  모더
니스트 스타일로 받아들였다.
  쇼스타코비치가 자신의  오페라에 고골리의 단편 '코'(1835)를  선택한 
것은 주로 그  풍자적 내용때문이었다. 1920년대에 '고전적 제재에다  풍
자의 성격을 갖추고 있는 작품을 오페라의 소재로  한다면 크나큰 화제를 
일으킬 것이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그의 음악스타일은  이 점에서 아주 
안성마춤이었다. 위트에 넘치며  윤곽이 예리하고 억제하기 어려울  만큼
의 에너지로 들끓고 있었다. 그는 작곡과정에서  자연스럽지 못한 파로디
나 아이러니는 피하고, 스토리의 진행과 음악으로  정확하게 비유하고 구
성은 간결을 다짐하고 등장인물의 성격을 굳건하게  묘사해서, 그 풍자의 
서슬의 사나움을 전하는  일에 초점을 모아 오페라를 만들려고 했다.  이
야기의 무대는 황제  니콜라이 1세의 시대로 설정되어 있지만,  오페라는 
1920년대의 러시아까지도 신랄한 수법으로 묘출하고  있다. 신문,의사,경
찰,교회,관공리, 인색한 부르즈와의  거드름 부림-이들 중 어느 것  하나
도 이 작품 속에서는 다치지 않고 무사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이  풍자에 대한  기호도 이내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레닌은 
1921년에 신경제정책을  정식으로 밀고  나왔을 때 문화면에서의  변혁은 
정치,군사,경제 상의 변혁처럼 손쉽지 않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눈치채고 
있었다. 예술을  손아귀에 넣고,  1920년대엔 방임되고 있던  실험주의를 
숙청해버릴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1922년의 법령에서는  RAPM및 ASM
에 대항하는 당파는 복종이 강요되고, 소련  작곡가동맹이 조직되어 음악
작품의 성격에  대해 왈가왈부를 못하게  하는 영향력을 지니게  되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목표가 큼직하게 내어걸리고 모든  작곡가들에 대
한 음악에 의한  목표의 수행이 요청되었다. 즉, "승리하는 전진적  진실
의 원칙을 목표로 하고 탁월하고 영웅적인 소련인민  정신의 아름다운 특
성을, 미와 생을 긍정하는 박력넘치는 음악적  이미지로 구현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쇼스타코비치가 1920년대 후기에 제작한  <코>를 포함
하는 많은 작품들이  레퍼토리에서 당장에 사라졌다. 아니나 다를까,  쇼
스타비치도 소련정부의 새로운 요청에 맞추어 자신의  음악스타일을 재고
하도록 강요당하고 말았다.
  이 명령이  발표되었을 때, 쇼스타코비치는 둘째번의  오페라<무첸스크
의 맥베드부인>의  완성을 바로 눈  앞에 두고  있었다. 그는 이  작품을 
'러시아의 별의별 시대를 살다간 여성의 지위를  주제로한' 3부작의 최초
의 작품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제재는 니콜라이  레스코프가 쓴 다채로운 
단편'1865년'인데, 19세기 러시아의 토박이- 시골의 숨이  막힐듯한 황폐
한 공기 속에서  절망적인 진실한 사랑과 행복을 찾은 여성  카테리나 이
즈마이로봐의 비극적 운명을  그린 작품이었다. <맥베드 부인>의  음악에
는 풍자로 가득찬  <코>의 모습이 꽤 남아 있다. 쇼스타코비치에  따르면 
'권력을 좋아하는 폭군'인  카테리나의 의부 보리스의 희화 비슷한  묘출
이라든가, 경찰에서의  희극적 장면(7장)이라든가는, 뉴욕  초연(1935)당
시에 콜린 다운즈가  평했듯이 키튼의 경찰관을 방불케 한다. 그러나  무
엇보다도 이 작품인즉, 그러니까 특히 카테리나  자신의 노래에서 느껴지
는 것은 신선한, 강한 서정과 정렬이다. 전체  등장인물 중에서 카테리나 
하나만이 순수하게 인간적인 감정-격렬한  분노,사랑,고뇌,최후에는 비참
한 절망-을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쇼스타코비치는 이러한 감정들을  정
감이 푸짐한 진실하고 고결한 음악으로 강조하고  있다. 오페라의 첫머리
에서 노래불려지는 카테리나의  심각한 외침과 애인 세르게이에 대한  정
열적인 애원과 제3막에서의  행복의 꿈, 종막에서는 나락에서 떠밀려  떨
어지는 듯한 비통한  울먹임을 부드럽고 단순한 일글리쉬 호른의  소리가 
효과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레닌그라드에서 초연(1934)된 이 오페라는 처음 한동안은  사회주의 리
얼리즘의 최고의  예이며, 소련  오페라의 모범으로 환영받았다.  그러나 
불과 2년도 못되어,  스탈린 자신이 상연을 자세히 지켜본 다음에는  '프
라우다'지상의 논평에서  '음악이 아니라  혼란'이고, "잡음만  터뜨리고 
한껏 자연주의적인 연애장면을 표현하려고 기를 쓰고  있다" 고 비난하고 
있다. 무대 위에서의 노골적인 연애묘사가 빅토리아  왕조풍의 옛날 예절
을 몸에  담은 스탈린에게 혐오감을  품게한 건 사실이었으리라.  그리고 
음악자체도 비판받았다.  쇼스타코비치는 <코>나 교향곡 제2번의  숨막히
도록 신랄한 스타일은 이미 저버리고 있었지만,  귀에 거슬리는 불협화음
과 간주곡에서나  들을 수 있는 거대한  수사학적인 음악을 가끔은  아직 
사용하고 있다.
  <맥베드 부인>은 레퍼토리에서 제외되고 1963년에  <카테리나 이즈마이
로봐>로  재연되기까지  매장당한  작품으로  전락했다.   교향곡  제4번
(1935-36)에 대해서도 이 작품이 <맥베드 부인>에  통하는 대담성과 음산
한 힘을 지니고  있으며, 오케스트라의 사용법도 분방하고  교향곡으로서
의 구성은 무겁고  정통적이 아닌 점을 고려해서 쇼스타코비치는  리허설
을 중단하고 악보를 빼앗아버렸다. 그 대신 그는  교향곡 제5번의 창작에 
착수했다. 이것은 '부질없는  비판에 대한 소련예술가의 해답'을  의도한 
것으로, 20세기 음악의  레파토리로서 중요한 지위를 정당하게  얻어내는 
역할을 했다. 이  교향곡을 정치적 관점에서 해석하고 도처에서  '강제적 
낙천주의' 또는 '권위에의  저항'을 찾아낼 수도 있지만, 역시  순수하게 
음악적인 측면에서 보는 편이 더 흥미롭다. 여기서의  '해답'은 가령, 교
향곡 제4번이나  <코>보다도 알기 쉬운  직접적인 수법으로 표현되어  있
다. 본질적으로는 귀에 거슬리지 않고 구성에도  테마에도 위대하고 고결
한 품위가 느껴진다. 이러한 특징은 쇼스타코비치의  예술상의 변절을 표
시하는 것이 절대로 아니며, 오히려 인간적 성숙을  표시하는 증좌다. 피
아노 협주곡 제1번(1933)이나  첼로 소나타(1934)같은 작품에서 이미  엿
보이던 정신의 안정된 자세다. 이론(異論)도 있긴하지만,  1920년대 후반
의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에서 보였던 초모더니즘에 장래에의  발전은 전연 
없었다. 그  한편으로 1930년대의 그의  음악은 굳건한 기반을  형성해서 
그 기반 위에 그 후의 스타일이 구축되었다.

체제와 반체제

  교향곡 제5번을 다  쓰고난 직후의 시기는 유달리 많은 결실이  있었다
고는 할 수  없지만 쇼스타코비치는 제5번에서 시도한 스타일을 한결  더 
부연하여, 싸늘한 신선미를 가진 현악 4중주  제1번(1935),기묘하게 균형
을 잃고 있는  교향곡 제6번 그리고 훌륭한 피아노5중주곡(1940)을  제작
하였다. 또한  어는 시기에서도 정열을  쏟은 영화음악을 숱하게  작곡하
고,  무소르그스키의  <보리스   고두노프>(1939-40)편곡판도  완성했다. 
1941년이 되어  소련이 제2차 세계다전에  참전하는 바람에 각급  지위의 
전환과 강제철수 사태가  벌어졌다. 상상하기에 어렵지 않은 일로서,  전
쟁의 공포는  많은 작곡가들로부터 애국심,저항,영웅주의의 표현을  끄집
어냈다. 가령, 프로코피에프는 교향곡 제5번, 제6번을  냈고, 마야스코프
스키는 전쟁 교향곡의 시리즈(제21-23번)를 발표하는가  하면 쇼스타코비
치는 교향곡 제7번(1941)을 썼다. 독일군에 의한 너무도  오랜 동안의 포
위공격에 시달린 레닌그라드시에 이 곡은 바쳐졌다.  힘차고 도전적인 작
품이었다. 이 교향곡에서 가장 화제를 일으키는  대목은 한없이 되풀이되
는 행진곡을 테마로 갖는 장대한 제1악장일 것이다.  이 행진곡에 견디다 
못한 바르토크는 자신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에서 이 대목을  비꼬
고 있다. 이  악절은, 내습해오는 적의 진군의 표현으로  받아들여질는지 
모르지만, '쇼스타코비치의  증언'(런던,1979년 출간)에 따르면 이  교향
곡은 나치의  침략이라기 보다  소련 내부에서의 스탈린주의의  끊임없는 
탄압을 그린 것으로  되어있다. 어쨌든 이 교향곡은 인간의 생명과  비극
성, 소련인의 탄력성과 생명력의 강함을 역력하게  묘출한 작품으로 인식
되고 있다. 이 제7번과 전시중에 제작된  제8번(1943)은 어느정도 음악의 
자세가 달라져 있다.  제8번은 씁쓸하게 가라앉은 침통하게 비관적인  양
상이 짙다. 첫머리  부분은 제5번과 비슷하지만 파고드는 바가  깊어졌음
을 느끼게 한다.  이 첫머리의 소절부터 음침한 분위기가 강하게  지배적
이며, 명랑한  흥청거림을 가장한 마지막  알레그레토 조차 이  어두움에 
빛을 줄  수는 없다. 쇼스타코비치의  친구 이반 솔레르틴스키의  추억을 
위해 작곡된  피아노3중주곡 제2번(1944)에도 마친가지로 우울한  무드가 
떠돌고 있다. 단  하나 고골리의 희곡 '도박자'(1836-42)에 따라  원작에 
충실하게 제작된 오페라에서만  경쾌함과 밝은 분위기가 엿보인다.  그러
나 이 오페라는 완성을 보지 못하고 미완의  작품은 1978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상연되었다.
  전쟁이 끝난 다음 쇼스타코비치는 교향곡 제9번(1945)을  작곡했다. 작
곡가 자신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제7번과 제8번이  비극적 영웅적 성격
을 가졌다고 한다면  제9번은 투명하고 밝은 무드에 지배되고 있다.'  약
간 불길한 느낌을  암시하는 부분은 라르고의 제4악장에 불과하다.  쇼스
타코비치에게서 더 중후한 맛을 기대하고 있던 사람들이  이 교향곡의 명
랑 경쾌한 유머에  당혹을 느꼈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더욱 난처한  일로
는 3년후의 1948년에 이 작품은 소련음악가회의에서  비판의 댜상이 되고 
말았다. 이때 쇼스타코비치,프로코피에프,하차투리안을  비롯한 가치있는 
많은 소련작곡가들이 소위  형식주의적 경향을 비난받았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들 작곡가의 음악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정도에서 벗어나 일
반대중의  지적이해를 넘어선  경향이 있다는  이야기다. 그들의  음악은 
'지나치게 잘못되어 있다'고 스탈린시대에  공산당중앙위원회의 예술위원
을 지낸 안드레이 즈타코프는 비판했다. "이는  비인민적이며 심미가들의 
개인주의적 경험에  영합하려는 것이다." 극단적인 불협화음과  복잡성이 
즈타노프의 노여움을 산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서 쇼스타코비치는  작품에 대해 신중을 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진행중 또는 계획중의 작품  가운데엔 즈타노프나 스탈린이 
목표로 하고 있는  것과는 어긋나는 음악도 있었다. 풍부한 넓이를  가진 
내정적인 제1악장과  거대한 팟사칼리아의 제3악장을 갖춘  바이올린협주
곡 제1번(1947-48), 현악4중주곡 제4번(1949)등이다.  쇼스타코비치는 이
들  작품을   침묵시키고  수많은   영화음악과  오라토리오  <숲의   노
래>(1949), 칸타타<우리 조국에 태양은 빛난다> (1952)등의  합창곡을 대
중을 향해 발표했다. 그러나  5년 후엔, 더 사적인 작품을 공표할  수 있
는 기회가 왔다. 1953년의 스탈린의 죽음에  이어 문화상황에 해빙현상이 
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일은, 쇼스타코비치는  교향
곡 제10번(1953)에  착수해서 8년에  걸진 교향곡작품의 침묵이  깨졌다. 
이론(異論)이 있을 지 모르지만 제10번은 쇼스타코비치  최대의 고향곡이
며 초기의 많은 작품에 저류처럼 존재하고 있는  깊은 멜랑콜리가 표면에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 교향곡은 또 다른 면에서도 사적인  색채
가 짙다. 쇼스타코비치는 테마의 모티에 디미트리  쇼스타코비치 Dimitry 
SCHostakowitsch에서 딴 두문자  DSCH을 사용 D-Eb-C-B의 음형이  되풀로 
곡을 쓰고 있다.  또 생애의 마지막에서 발표한 롯시니와 바그너에  관한 
언급이 들어가 있는 수수께끼의 작품 교향곡  제15번(1971)에도 인용되어 
있지만, 여기서는  DSCH의 모티프는 귀로  듣기보다는 눈으로 보는  편이 
알기 쉽다. 교향곡 제10번에선 모티브의 화성적  취급이 작품전체에 색채
를 주고 피날레의 클라이맥스에서는 힘차게 극적인 효과를 올리고 있다. 
  후기 스탈린시대의 최초의  교향곡으로서, 제10번은 거센 논젱을  불러
일으켰다. 비평가들은 한편에선  제1악장의 긴 페미니즘에 진력을  내고, 
또 한편에선 쇼스타코비치 자신이 후기의 작품에서  실천했듯이, 이제 작
곡가는 스스로의 예술적  본능에 따라야한다고 강조했다. 교향곡  제10번 
이후 쇼스타코비치의 스타일은 훨씬 더 내성적으로  되어, 그때까지 억제
에 억제를  거듭해오던 음악에 의한  자신의 내면표현에 더욱  열중했다. 
그래서 그가  실내악에 열중하게 된  것도 자연적인 현상이었다.  자신의 
내심을 들여다보듯이 해서 9곡의 현악4중주곡이, 그리고  마지막 해엔 비
올라소나타(1975)가 제작되었다. 또  가곡에도 정열을 기울여 만년이  되
자 일체의 군더더기가 없는 깊은 절망을 내면에  숨긴 가곡집을 작곡했는
데, 이것은 소련가곡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성음에  대한 집중적인  흥미는 쇼스타코비치의 만년의  두개의 
교향곡,  제13번(1962), 제14번(1969)에도  넘쳐흐르고 있다.  5악장으로 
이루어지는 제13번에선 악장마다 스탈린시대의 상황을 그린  에프게니 에
프투셍코의 시가 바리톤과  오케스트라로 노래불려지고 있다. 이  교향곡
이 1962년에  초연되었을 때  사람들은 열광했지만 이건  음악때문이라기 
보다는 특히 제1악장에 나오는 '바비야르'라는 말  때문이었다. 에프투셍
코의 시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유대인이  바비야르에서 독일군에게 당한 
학살을 다루고 있었는데 부분적으로는 소련 내에서의  반유대주의가 암시
되어 있었다. 초연  뒤에 중앙위원회는 두 군데의 불온한 부분을  파시즘
에 대한 소련의 투쟁을 강조하는 말로 바꾸어  놓고 바비야르에선 유대인
뿐만아니라 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에도 희생자가 나왔다는 사실을  분명
히 하도록 요청했다. 이 교향곡에선 '바비야르'의  악장에 최대의 주목이 
집중되곤 하지만 '유머'의 제2악장의 날카로운 비꼬움,  그리고 '공포'의 
제4악장의 가슴에 콰당탕하고 울려오는 무거움에는 역시  부르르 몸이 떨
린다. 스탈린주의의 공포를  그린 작품으로서 귀로 듣는 가장 무서운  그
림으로 되었다.
  비꼼,공포,죽음-이런 관념들이  쇼스타코비치의 만년을 지배하고  있었
던 것 같다. 그리고 교향곡 제14번에는 이 세가지가  마으믈 꿰뚫듯이 표
현되고 있다.  이 처절하고 어두운  작룸은 실제로는 소프라노와  베이스 
그리고 소편성의 현과  타악기의 오케스트라를 위해 제작된 가곡이며  릴
케,로르카,아폴리네르,퀴헬베커에 의한  11편의 시가 채택되고 있다.  제
14번의 리듬적 성격은 쇼스타코비치 특유의 것으로  선율의 알뜰함, 오케
스트레이션의 독자성  등은 멀리  제1번에까지 거슬러올라가는  것이지만 
이러한 특징도 이  작품에서는 외부에서 무엇인가가 비집고 들어오는  것
을 마치 거부하는 듯한 내성과 격심한 고뇌로 변질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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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경   (jong5235)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5번=> 므라빈스키 -     1994-02-12 23:43   63 line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제  5번은 그 처절한 고뇌의 깊이와 암흑을 
헤치고 광명에로의 환희로, 가장 감격적인 교향곡 중의 하나다. 
 
우리나라에서도 번스타인의 지휘로  뉴욕 필하모닉이 내한, 세종문
화회관에서 연주했을 때  우리는 그 깊은 음악성에 감격했으며, 몇 
년전 레닌그라드 필하노닉의 내한 연주때 도 소련악단의 그 본질적 
음악성 추구에 크게 감탄했었다. 

 이 교향곡은 쇼스타코비치의 14개 교향곡중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
로 손꼽힐  뿐 아니라, '암흑에서 광명으로'   라는 베토벤 특유의 
음악목표에 가장 알맞는  작곡 사상으로 베토벤의 교향곡 제 5번에 
비교되는 교향곡이다. 
 
쇼스타코비치는 이 교향곡을  작곡하기전인 1936년 초 공산당 기관
지 스파우다지로부터 혹독한 비판을 받고 있었다. 그것은 쇼스타코
비치가 1932년 작곡한 오페라  '무젠스크의  막베스 부인' 과 함께 
발레 음악'밝은 시냇물'  등의 화제작이 서구 부르주아 형식주의의 
음악으로 비소비에트적 작품이라는  것이었다. 게다가 '밝은  시냇
물'의 발레를 볼쇼이 극장에서 관람한 스팔린이 격분했다는 이야기
도 들렸다. 그때는  스탈린의 공포정치 시대였던 만큼 자칫 잘못하
다가는 수용소로 끌려가게 될 운명이 되고 마는 수도 허다했다. 그 
당시 쇼스타코비치는  이 통렬한 비판 기사를  읽고 크게 쇼크받아 
제 4번 교향곡을 연주하도록 되어 있는 데도 불구하고 그 연주회가 
열리지 못하도록 악보를 모두 거두어 버리고 말았다. 쇼스타코비치
는 그의 회상록  '증언' 에서 그 날의  기막혔던 일을 자세히 쓰고 
있다.

  '그날을 나는 결코 잊을   수가 없다. 그것은 나의 일생 중 가장 
잊어버리고 싶은 날이기 대문이다. 프라우다지 3면에 실린 그 논문 
때문에 나의 살아가는 방법이 변하지 않으면 안되었기 때문이다.' 
 
 쇼스타코비치는 우선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
했던 것  같다. 때문에 그 해  봄 발표하기로 예정되어 연습중이던 
교향곡 제 4번의 악보를 전부 회수하고 만것이다. 제 4번이 그대로 
발표된다면 또 한번 비판의 대상이 될 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쇼스
타코비치는 은인자중 약 2년 가까이 근신했다. 그리고는 어떤 눈으
로 보아도 비난의 여지가  없는 완벽한 작품을 만들어 명예을 회복
하리라 결심했다. 그런 의도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이 교향곡 제 5
번이다. 1937년 11월 21일,  레닌 그라드 필하모닉 홀은 긴장의 도
가니였다. 쇼스타코비치가 '인민의  적'으로 추락하느냐 아니면 추
앙받는 소련이 대표  작곡가로 명예를 회복하느냐 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날의  쇼스타코비치는 '도마위의 생선격이었다.' 고 
자신의 심경을 회고록에서  토로했다. 므라빈크키의 지휘봉으로 시
작된 그날의 연주는 대성공이었다. 푸라우다지도 '사회주의 리얼리
즘에 가장  충실한 작품'이라고 추켜세웠다. 이  곡을 분석해 보면 
'네오 베토벤 스타일'이라고 볼  수 있다. D 단조인 점은 베토벤의 
9번과 같으며 하나의  동기를 계속해가며 전진해 나가는 방법은 제 
5번 운명과 닮아 있다. 처음은 어둡고 비극적으로 시작해서 마지막
은 승리의 행진곡으로 끝맺는  것 등 베토벤의 고뇌- 극복- 환희라
는 작곡 방법을 그대로 본받고 있는 것이다. 
 
이 레코드의 초연을 맡았던 므라빈스키가 41년 후인 1978년 6월 12
일 , 비엔나에 레닌그라드  필을 끌고 와서 비엔나 뮤직 페라인 잘
에서 연주회를  가졌던 실황녹음판이다.  므라빈스키는 레닌그라드 
필의 상임 지휘자가  되자마자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제 1번을 초
연한 이래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거의  모두를 초연한 지휘자로, 
그의 이상,  고뇌를 다시 없이 객관화시켜  연주한 가장 호흡이 잘 
맞는 지휘자와 작곡가 사이였다. 이제 므라빈스키도 저세상 사람이 
되고 만 지금 이 연주는 길이 기억될 명연이 아닐 수 없다. 특히 3
악장은  므라빈스키가 쇼스타코비치를 가장 잘 표현했다는 평을 듣
고 있다. 

                          - 명곡 명반 순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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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영   (750204  )
[쇼스타코비치]교향곡5번...                   1993-11-29 04:18   16 line

고음동 처음 들때였습니다.
자기소개란에 좋아하는 곡을 쓰라고 했을때...
저는 주저없이 이 글의 제목을 썼답니다.
곡의 해석을 주저리주저리 적고 싶진 않군요.
왜냐하면 이 곡은 사람 기분에 맞추어 다르게 들리는 묘한 게 있거든요.
제가 이 곡을 처음 들은건 음악감상실에서였어요.
무심코 앉아서 딴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이런,딴 생각을 하다니...)
갑자기 터지는 듯한 심벌즈 소리...
뒤이어 들리는 급박한 리듬...
혼돈된 듯한 ...그러나 장엄한 화음...
.......
그 날 당장 그 판을 샀습니다.
무언가 혼란스럽다고 느끼는 분들에게 이곡을 권합니다.
하지만 슬픈 분들은 듣지 마세요.
눈물이 나오는 수가 있거든요.
___________________________별이 보고픈날...지영이가...____________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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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세진   (rachmann)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5번.                   1993-11-05 22:58   16 line

쇼스타코비치는 누구든지 음악에 관심을 가지이면 현대음악에 그의
존재의 영향이 얼마나 지대한지를 짐작할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가 남긴 많은 교향곡중에 5번을 권하고 싶다.
아마도 베토벤의 5번 에 비견될만한 역작이라고 한다.
제 1악장:나쁜 운명을 짊어진 듯한 주제로 곡이 시작된다.이분위기는
      곧 가라앉지만 부분에서 조차 사라지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비극적임.
제 2악장:베이스의 유머러스한 주제로 시작하지만 전체적으로 무겁다.
제 3악장:가요적인 서정으로 가득찬 아름다운 악장으로 이곡의 백미이다.
제 4악장: 행진곡풍으로 곡전체의 무거운을 털어주는 분위기이다.

차이코프스키,라흐마니노프등 러시아 음악의 독특한 분위기를
느낄수있을 것이다.


        라흐마니노프을 그리워하는 rachmann-in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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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종욱   (qparkjw )
쇼스타코비치 2,3의 비극                      1992-08-08 20:55   23 line

쇼스타코비치의 15개 교향곡중 가장 인기없는 2,3번을 들으며
나의 머리는 온갖 혼란으로 가득하다. 도대체 쇼스타코비치같은
천재에게 "오! 레닌이시여! 당신은 우리를 슬픔에서 해방시켜
주셨읍니다. 우리는 노동자의 영원한 승리를 위해서 끝까지 투쟁할
것입니다."라고 외치게 하는 교향곡을 작곡하도록 강요하는 그
이데올로기란 무엇일까? 도대체 한낱 정권을 가진자들의 권력
유지를 위한 이데올로기란 무엇이길래 인간의 자유로운 창조와
표현까지 왜곡시키는 것일까를 생각하며 요새 내가 당면한 문제
들과 연관하여 나를 나약하고 우울하게 한다.
어렸을적부터 꿈꾸어 오던 오케스트라 활동의 꿈을 가지고 대학에
왔지만 내가 다니는 학교에 오케스트라도 없을 뿐더러 순수한 음악
활동을 골빈 애들의 무가치한 장난 정도로 여기는 인식과 싸우기를
6년, 그러나 아직 새로 조직한 오케스트라를 동아리 연합회에 등록
시키기에는 많은 벽이 있었다. "오케스트라요? 그거 악기 살려면
돈 많이 들지 않아요? 그럼 돈 많은 애들이 모여서 그냥 악기 한다고
노는거 아닙니까? 그런 서양 고전음악을 이땅에 연주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읍니까? 이땅의 민중들이 탄압받고 있는 이 상황에서 서양
음악은 결국 자본주의 이념의 첨병입니다. 우리는 민중들을 위한
고뇌하고 깨어있는 음악을 추구해야 합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과
나사이에 놓인 벽을 보며 60년이나 전에 쇼스타코비치를 향하여 레닌과
10월 혁명을 찬양하는 곡을 쓰시오 라고 명령하는 사람들과 그 이데
올로기가 지금 이 대학의 문화에도 살아있음을 느끼며 허탈한 감정을
누를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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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중   (poseidon)
쇼스타코비치...교향곡 9번                    1992-04-17 01:15   22 line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9번은 프로코피에프의  "고전교향곡"과 
비견되는 작품으로 쇼스타코비치의 "고전 교향곡"이라고  불리워
집니다. 다른 작품에 비해서 스케일은 떨어지지만 짧고 간결하며 
해학적인 작품입니다.
  이 곡은 풍자와 해학, 유우머, 그리고 그로테스크함이  가득하
며, 대단히 무식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고동회에서는 이런  것을 
뽕짝 분위기 또는 곡마단 분위기라고 하죠. 이것은 교향곡  보다
는 협주곡 쪽에서 잘 나타납니다.
  쇼스타코비치의 이런 해학적인 성향은 말러와 비견됩니다.  그
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해학의 강도와 맞먹는 곡은 말러의 작품에
서 밖에 찾아 볼 수 없죠. 쇼스타코비치의 아다지오도  말러적이
지만 이런 해학적인 곡도 말러적이라고 할 수 있죠.
  곡은 5악장으로 구성되는데 4악장은 대단히 짧아서 5악장의 서
주 쯤으로 간주되기도 합니다.
  이 곡의 1,3,5악장은 빠르고 쾌활하며  2,4악장은  상대적으로 
느리고 음울합니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대비의 효과를  극대화시
키죠.
  연주는 겐나디 로제스트벤스키의 연주를  들어보세요.  대단히 
무식합니다. 타악기가 지나치게 강하게 녹음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만 뿅가는 연주입니다. 하이팅크는 다소 온건한 연
주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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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도영   (901940  )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         1992-01-27 03:41   13 line

사회주의 작곡가로서의 쇼스타....의 대표적 작품이다
혁명교향곡에 버금가는 곡으로 배경은 2차세계대전중 독일의 소련 침공중
항거하는 소련인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작품으로 예술적인 가치는
다소 뒤떨어진다는 평을 듣고있다.
압권은 당연히 1악장 알레그레토이다. 26분여의 정신없는 타악기와 금관악기
의 조화에서 소름끼치는 중견의 쇼스타코비치의 번쩍이는 재능을 엿볼 수 있
다.3악장 아다지오의 전열의 정비에서 4악장으로 이어지는 투쟁의 승리는
이곡에 심취 되면서 자연스럽게 연상될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라이센스판은 서울음반의 2lp와 EMI의 CD(모리스 얀손/레닌그라
드 필)밖에 없는 것으로 알고있다. CD를 권하고 싶다.
예전의 이작곡가의 작품을 연주,방송을 금지하던 시대는 아니지만 많은
작품 접할 수 없는 점 아쉽게 여겨진다.
고동회의 많은 애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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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중   (poseidon)
쇼스타코비치...교향곡 11번 "1905" 피~        1991-12-04 21:27   33 line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11번 "1905"는 1905년에  있었던  피의 
일요일 사건을 그린 곡입니다. 교향곡 9번을 작곡한 후  9년동안 
침묵했던 쇼스타코비치는 오랬만에 교향곡 10번을 내놨는데 기대
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교향곡  11번
은 레닌상을 수상하는 등 대단한 평가를 받았고 지금도 그의  교
향곡 중 5번 7번과 함께 가장 인기있는 교향곡으로 꼽히고  있습
니다.
  암울했던 전두환 정권 시절 광주항쟁을 연상시키는 이  교향곡
은 금지곡으로 묶여있었으나 전자오락 "왕탱크"의  배경음악으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어 음악애호가들의 갈증을 풀어주었습니
다.
  묘사적 성격이 특히 강한 음악인 만큼 그의 다른 곡에서  찾아
볼 수 있는 "곡마단적 해학"은 별로 찾아 볼 수 없습니다.  다만 
4악장이 어느정도 그런 경향을 띄고 있습니다.  그의   음악에서 
자주 나타나는 곡마단 분위기는 크나큰 매력입니다. 이 곡도 4악
장이 마음을 끄는군요.
  1악장 "왕궁으로의 행진"은 잔뜩 억눌린 답답한 음향으로 일관
하여 장차 있을 피비린내 나는 비극을 암시합니다.
  2악장 "1월 9일"은 격렬한 음향으로 정부군의 유혈진압을 묘사
합니다. 전반부는 금관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후반부로 가면 작은
북, 팀파니, 큰북등을 총동원하여 무차별 사격을 묘사합니다. 무
식한 리듬이 돋보이는 타악기의 향연부분은 헤비메탈 뺨치는  격
렬함이 가득합니다.
  3악장 "영원한 추억"은 희생자를 추모하는 장송곡입니다. 말러
적인 애절함은 별로 없고 비교적 담담하고 차분한 곡입니다.
  4악장 "경종"은 역시 무식한 리듬이 돋보이는 곡으로서 새로운 
세계에 대한 예찬의 성격을 띄고 있습니다. 끝부분에 가면  제목 
그대로 종을 "뎅~뎅~"치는 부분이 있는데, 정열스는  이걸  듣고 
유치하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경종"이라고 제목을 붙여놓고  종
을 안치는 것도 이상하지 않습니까?
  음반은 키릴콘드라신이 지휘한 모스크바 필의 연주를 들어보시
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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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중   (poseidon)
쇼스타코비치 14번 "죽은 이를 위한 노래"      1991-09-14 21:10   26 line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14번 "죽은 이를 위한 노래"는 러시아,
독일,프랑스,스페인의 죽음에 관련된 시를 가사로 사용한 곡입니
다. 가사는 모두 러시아어입니다. 교향곡이라고는 하지만 관현악 
반주가 딸린 가곡에 가깝습니다. 물론 오케스트라의 비중이 상당
히 큰 것은 사실입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말러의 "대지의  노
래"와 유사하죠.
  이 곡은 12음을 사용한 음악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전위적인 
편은 못되는 것 같습니다. 다분히 낭만적인 경향의 곡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죽음을 다루었다고는 하지만 레퀴엠 등에서  볼  수 
있는 엄숙함은 없고 그로테스크하고 해학적입니다. 이런  점에서
는 말러의 "어린 아이의 이상한 뿔피리"와 어떤 연관성을 갖는다
고 할 수 있겠습니다.
  모두 10개의 악장으로 되어있고 소프라노와 베이스의 독창  또
는 중창으로 연주됩니다. 목금, 캐스터네츠, 탐탐,  우드블록,첼
레스타 등의 타악기의 활약이 눈부십니다. 이렇게 유별난 타악기
가 두드러지는 것은 그의 다른 교향곡들 들어봐도  마찬가지입니
다. 강렬한 리듬과 절규에 가까운 노래는 듣는 사람의 혼을 완전
히 빼놓습니다. 곡에 따라서는 해학적이며 대단히  유우머러스하
기도 하고, 처철한 절규가 있는가 하면, 침통한  노래도  있습니
다. 그의 노래에 나타나는 해학은 다시한번 말러를 생각하게  합
니다.
  레퀴엠 같은 곡은 가사를 몰라도 충분히 감상할 수 있지만  이
렇게 해학적인 곡은 가사를 모르고서는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겠
더군요. 물론 가사를 모르는 상태에서 들어도 기가막힌 곡이기는 
합니다. 가사를 갖고 계신 분은 빨리 올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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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소연   (whiparam)
쇼스타고비치 5번이 뿅~가는이유!              1991-09-14 11:08   22 line

그건 1악장의 긴  모데라토 때문인데요..
첫 시작이 모데 라토라는게 어쩐지 맘에 듭니다.
쇼스타고비치를 처음 듣던 시절엔 첫악장 모데라토가 제게 퍽이나
낯설고 경이로운 어떤 것이었죠..
마치 혁명이 일어 나기 직전의 이른 새벽 분위기라고나 할까요..
그리고 전 개인적으로 쇼스타고비치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데요..
"끝까지 러시아의 차가운 공기를 호흡 할 것을 고집한 "
사회 주의 작곡가  로서의 그의 어떤 매력 때문 입니다.
흔히,5번과 6번을 베에토벤적이라고들 하지만...
저는 특히 5번의 경우 베에토벤과 말러를 동시에 느낄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5번을 베를린 필의 것으로 듣고 있는데요..
3번 메이데이를 모스크바 필의 연주로 들어보니...
이거다..싶더군요.
5번을 모스크바필의 연주로 가지고 있는 분은 감상을 좀 올려 
주셨으면...
모스크바필의 연주를 하나 더 사고는 싶은데..요새 브람스판의 
다른연주에 출혈을 좀 하고 있어서...쩝...

                        휘파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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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중   (poseidon)
쇼스타코비치 12번 "1917" 볼셰비키 혁명       1991-08-31 16:26   43 line

  요즘 소련 사태로 세상이 떠들석 하고 세계의 관심이 온통  소
련에 집중되어 있죠. 덕분에 소련 역사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볼셰비키 혁명에 대한 재조명이랄까 뭐 그런것도 이루어지고  있
죠.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12번 "1917"은 1917년에 있었던 볼셰비
키 혁명을 다룬 작품입니다. 교향곡 11번 "1905"에서 피의  일요
일 사건을 다루고 그 후속편으로 이 곡을 작곡한거죠. 역사적 보
편성을 갖는 11번에 비하면 보다 체제 순응적이고 사회주의적 리
얼리즘에 충실한 작품이죠. 앞으로는 소련 내에서도  자주  들을 
수 없는 곡이 될 것 같습니다.

  곡은 순환형식을 사용했고, 4악장을 계속해서 연주합니다.  따
라서 작품의 통일성이 잘 유지됩니다. 각 악장의 주요주제는  순
환주제를 변형시켜 만든것이 많습니다.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에 입각한 작품이고 각  악장마다  표제가 
붙어있으므로 이해하기는 쉽습니다. 그의 후기 교향곡에서  발견
되는 난해함은 없죠.

  1악장 - 혁명의 페트로그라드
            혁명을 그린 곡이니 만큼 격렬합니다.  저현의 장중
          한 서주로 시작하여 격렬하게 전개되지만  무척  화려
          합니다. 오디오의 성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곡입
          니다. 타악기와 금관의 활약이 눈부시죠.

  2악장 - 라슬라프
            이건 레닌이 혁명의 구상을 가다듬었다는 호수 이름
          입니다. 역적모의 할 때 나오는 음악답게  정적이면서
          도 긴장감이 감도는 음악입니다.

  3악장 - 오로라
            왕궁에 발포하여 혁명의 시작을 알린 순양함의 이름        
          입니다. 영화 U보트에서 순양함이 다가오는 장면이 있
          었는데,  그런데에 쓰면 딱 어울릴 것  같습니다.  행
          진곡 풍의 음악인데  긴장감이 감돌면서  거대한 배의 
          전진이 느껴집니다. 후반부에는 정열스가 좋아하는 강
          렬한 타악기의 리듬이 나옵니다.

  4악장 - 인류의 새벽
            축제적 성격을 지닌 화려한 피날레입니다. 승리의 
          개가라고 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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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정열   (wamozart)
쇼스타코비치 11번 "1905년"                   1990-12-24 17:16   85 line

안녕하세요? 와~모짜르트 윤정열이 다시 인사드립니다. 원래는 모짜르트
의 교향곡 시리즈를 계속하려고 했는데 제가 좋아하는 교향곡 하나가 눈
에 들어와서 잠깐 외도(?)를 하겠습니다. 쇼스타코비치의 곡으로 교향곡
제11번 "1905년"입니다. (참고로 poseidon 김경중 군이 본인의 강력한
추천을 받고 어저께 구입했다는 레코드입니다. 물론 추천한 사람이나 추
천 받은 사람이나 취중이었지만...)

Dmitri Shostakovich: Symphony No.11 in G minor, Op.103 "1905"

1st mvt. Adagio
2nd mvt. Allegro
3rd mvt. Adagio
4th mvt. Allegro non troppo

연주단체는 모스크바 필이고, 지휘자는 유명한 키릴 콘드라신입니다. 죽
기전 유럽에 망명해 마르타 아르헤리히와의 연주 레코드도 남겼죠. 불행
히도 망명한지 얼마 못살고 죽었지만... 아마 콘세르트헤보우 오케스트라
의 지휘자로 활동했을거예요. 원래 쇼스타코비치 교향곡의 대부분은 므라
빈스키에 의해 초연되었고 므라빈스키가 쇼스타코비치의 대가이기도 하죠.
카라얀도 쇼스타코비치곡을 연주하지 않는 이유로 므라빈스키가 이미 완
벽한 연주를 남겼기 때문이라고 실토한 적이 있지요. 대개 므라빈스키의
레닌그라드 필은 서구적인 울림을 가지고 있는데 비해 나머지 소련 교향
악단은 대개 조금은 거칠은 음색을 내고 있으며 모스크바 필도 예외는 아
닙니다. 

원래 이곡은 러시아 혁명을 주제로 한 곡이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접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사실 쇼스타코비치의 다른 곡들도 그랬지
만 이 곡은 공산혁명인 러시아 혁명을 노골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라 우리
나라에서는 철저한 금지곡이었죠. 그런데 높으신 분들의 민주화 제스쳐
로 많은 쇼스타코비치의 작품들이 들려지기 시작했고 바로 이 작품도 그
기회를 타서 발간되었던 것입니다.

쇼스타코비치는 누구보다도 자신의 조국 러시아를 사랑했습니다. 그러면
서도 그는 당국의 탄압을 받아야만 했는데 무식한 스탈린의 '사회주의 리
얼리즘'덕에 많은 공격을 받게 되었죠. 특히 그가 흡수했던 서유럽의 전
위적인 음악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반하는 것이었고 그의 오페라가 중도
에 막을 내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2차대전후에는 '소비에트 인민에 반하
여 형식적인 왜곡과 반정부적 작태를 일삼는다'는 극단적 비판까지도 받
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이 "1905년"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충실한 작품입니다.
과연 그가 그 사상 하나때문에 이 작품을 썼을 까요? 그는 민중들의 독재
에 대한 항거를 예술적으로 본 것이고 그것을 그대로 예술화 한 겁니다.
그것은 비단 공산주의 혁명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죠. 좀 더 보편적인
것입니다. 

곡의 배경은 1905년입니다. 당시 제정 러시아는 극도로 부패해 있었고,
사회적으로 어지러운 상태였습니다. 전국각지에서는 데모와, 파업이 연이
어 일어났었습니다. 시민들은 1905년 1월 9일 일요일, 황제에게 청원하기
위해 왕궁으로 향했는데, 갑자기 정부군에서 발포가 시작되었습니다. 여
기서 시민들은 수천명의 사상자를 내었고--러시아 혁명의 도화선이 된 것
이죠. 혁명은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이 틀리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이
날은 "피의 일요일"이라 불리우고, 1906년 생인 쇼스타코비치는 부모로
부터 당시의 끔찍했던 상황을 들었던 것입니다. 곡의 초연은 1957년으로
므라빈스키의 지휘로 연주되었다 합니다.

각 악장에는 부제가 붙어 있는, 표제음악입니다. 전체적으로 리얼리즘을
지향하고 있죠. 또한 각 악장에 걸쳐 당시의 혁명가들의 멜로디가 차용되
었다는 점도 특색이죠. 1악장의 부제는 "왕궁의 광장"--아다지오의 답답
한 음향은 왕궁으로 향하는 시민들의 모습을 그립니다. 2악장의 부제는 
"1월 9일"--정부군의 일제사격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가장 처절하고 전율
감이 흐르는 부분입니다. 빠른 알레그로의 기괴한 멜로디는 스트라빈스키
의 봄의 제전도 연상시킵니다. 마지막은 타악기에 의한 강렬한 음향으로
일관합니다. 3악장은 다시 아다지오로 "영원한 추억"입니다. 죽은 이를 
애도하는 장송행진곡이죠. 4악장은 "경종"--혁명정신을 기리며 힘차게 나
아가는 민중의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쇼스타코비치가 한 말로 끝을 맺고자 합니다...

"나의 교향곡의 대다수는 묘비이다."

from wamozart

P.S. 오늘 분위기가 좀 달랐습니까?




P.S. 1995/06/04 덧붙임.
므라빈스키가 쇼스타코비치 곡을 많이 초연했다고는 하지만,
곡을 잘 연주하는 쪽은 므라빈스키가 아니라 콘드라신 같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콘드라신이 더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충실한 연주죠...
물론 쇼스타코비치가 그걸 원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콘드라신 스스로도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4번과 14번을 초연한 바
있습니다.

마지막 편집일: 2003-8-27 11:12 pm (변경사항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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