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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규님이 번역하신 카멜 FAQ

[김병규, gamaksae@hitel.net, 98.5]

CAMEL FAQ

CAMEL Frequently Asked Questions 한국어판 Ver 1.0


COPYLEFT. gamaksae, 1998

작성 : Ofir Zwebner 번역 : 김병규 (gamaksae)
E-MAIL : gamaksae@hitel.net

-ooO ^.^ Ooo

-

본 번역물의 저작권은 본인에게 귀속되어봐야 땡전 한푼 수입이 없을 것이 뻔하므로 만천하에 공개하는 바이며, 단지 바라는 것이 하나 있다면, 다른 곳에 퍼다 올릴때 만큼은 번역자의 이름 석자만이라도 꼽사리로 같이 껴주는 것이다.
캐멀의 Complete Collection 일보직전에 처한 작금에 생각해 보건데, 처음으로 캐멀의 Stationary Traveller LP를 구입하게 되는데 정신적 도움을 주었던 고딩어 시절의 김모양에게 이 글을 바치는 바이다.
참고로, 번역은 원문에 충실하려 노력했지만 입이 간질 간질한 관계로 추가적인 내용과 개인적인 사견도 일부 포함되었음을 밝히는 바이며, 개인적인 추가는 ( ) 속에 집어 넣었다.

1. 언제 어디서 캐멀은 처음 결성되었는가?

Andrew Laitimer, Andy Ward와 Doug Ferguson이 1971년 8월 20일에 North London의 Hampstead에서 Peter Bardens를 만난다. (어라~ 내 돌날이네...)
그들의 첫번째 공연은 71년 10월 8일에 북 아일랜드의 수도인 Belfast에서 "On"
이라는 그룹명으로 가진 것이며, 이 공연은 피터 바덴스의 Transatlantic 레코드사 와의 계약에 의한 의무적으로 펼친 것이었다고 한다.
"캐멀"이라는 이름으로 처음으로 대중들에게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71년 12월 4일 Waltham Forest 공과대학에서 Wishbone Ash의 서포트로서 공연을 한 것이었다.

2. 누가 캐멀이라고 이름을 지었으며, 왜 "낙타"인가?

멤버 누구도 그것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다. (빠가사리...)
그들은 매우 여러번 이름을 바꾸었으며 캐멀이라는 것은 단지 바꾸다 바꾸다 지친 마지막에 선택된 이름이다.
Mirage 뉴스레터에서는 바덴스가 지은 것이라고 하는데, 이 정보는 믿을만한 것이 결코 아니다.
(일부에서는 캐멀 담배가 스폰서로 나섰던 것이 아닐까하는 추측도 있는데, 그럴 만한게 앨범 재킷 등에서 담배냄새가 많이 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앤디 레이티머는 이 가설을 부인했다.)

3. 어떤 오리지널 멤버가 지금까지 재적해 있는가?

- 오리지널 라인업에서 현재 재적해 있는 인물은 Andy Latimer 뿐이다.
(위대한 독재자로 군림하고 있다. 음악적 색깔이 비슷한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의 리더, 알란 파슨스의 몰락에 비교하면 그래도 나은 편이다.)
창단멤버는 약 5년동안 4장의 스튜디오 앨범을 발표할때까지 지속되는데, Bass를 연주하던 Doug Ferguson이 좀 더 재즈적인 느낌의 소리를 추구하던 캐멀의 사운드에 만족하지 못하고 76년에 팀을 떠난 것이 첫번째 탈퇴가 된다.
Peter Bardens는 솔로 활동을 위해 78년에 팀을 탈퇴한다.
(일부 골수 아트록 매니어들은 이 시기를 캐멀의 타락시점으로 잡기도 한다.)
이후 Bardens는 "Single Factor" 앨범의 한 트랙에 게스트로 참가하며 "Pressure Points" 라이브에서도 우정출연한 바 있다.
오리지널 드러머 Andy Ward는 82년에 탈퇴한다.
이로써 오리지널 멤버는 앤디만 남게 되는 것이다.

4. 왜 Andy Ward는 "Nude" 앨범 이후 자리를 비우는가?

- 여러해 동안, 공식적인 이유는 "Single Factor" 라이너 노트에서 언급된대로 그의 손목 부상때문이라고 알려져 왔다.
하지만 진실은 그게 아니었다.
91년에 Q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Ward는 그 진실을 밝히는데, Ward는 그가 처했있던 중압감을 제대로 극복하지 못했고 결국 알콜중독과 손목절단으로 자살을 시도하기에 이른다.
이후 그는 자신을 극복을 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캐멀같은 활동적인 그룹에서 의 연주는 그에게는 너무 벅찬 일이었고, 결국 다행스럽게도 자신의 음악을 나름대 로 표현할 수 있는 다소 조용한 음악을 하는 그룹에서 연주를 할 수 있게 된다.
결국 다시는 캐멀의 멤버로서는 활동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비밀로 지키기 보다는 발표를 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에서 캐멀 프로덕션은 공식적으로 확인시킨 바 있다.

5. 그 밖에 다른 고정적인 라인업은 없었나?

- 캐멀의 라인업은 77년 이후로 부단히 바뀌게 된다.
77년 라인업에는 Mel Collins와 Richard Sinclair가 고정적인 라인업으로 참가 하지만, "Rain dances"와 "Breathless" 2장의 스튜디오 앨범과 그들의 첫번째 라이브 레코드인 "A live record"의 4개의 트랙에만 참가하고 또다시 바뀌게 된다. 다만 Mel Collins의 경우에는 고정적인 라인업은 아니지만 84년에 발매된 라이브 앨범 "Pressure points"까지 거의 모든 앨범에 게스트로서 참가한다.
Colin Bass는 비록 "Single Factor"와 "Stationary Traveller" 앨범에는 참가 하지 않았지만 79년 "I Can See Your House From Here" 앨범부터 팀에 고정적인 라인 업으로 참가한다.
Susan Hoover는 82년 "Nude" 앨범부터 작사가와 앨범 콘셉 담당으로 참가하였는 데, 그녀는 앤디 레이티머의 아내가 된다.

6. 그동안 어떤 사람들이 캐멀에서 연주를 하였나?

- 아주 많은 사람들이 캐멀을 거쳐간다. 더 자세한 것을 보시려면 멤버 리스트 항목을 참고하길 바란다.
(하이텔에선 li gamaksae, 나우에선 li 쥴리앙하시면 캐멀의 역사가 쫘르륵 나옵니다. 그 글들을 참고하시길.....)

7. Bardens, Ward, Ferguson. 얘네들은 지금 뭘하고 살까?

(저도 아주 궁금합니다만..... 답변이 그지 발싸게 같군요. 나중에 찾아봐야 겠군요. 이 부분은 원문을 그냥 씁니다....^^)
The location listed in the previous answer should answer this, but you can also check out Members Section in the Discography and FAQ site.

8. 왜 시간이 꽤 흐르는 동안, 앤디 레이티머는 "캐멀"이라는 이름을 고수했는가?

앤디는 언젠가 한번 "캐멀"이라는 이름을 버릴까 했었는데, 팬들이 그에게 제발 그렇게 하지 말라고 편지를 보내왔다고 한다.
(결국 이 이야기는 바꾸어 이야기한다면, Bardens 탈퇴 이후의 캐멀은 앤디 레이 티머의 솔로 프로젝트 그룹으로까지 몰아붙일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되겠다.)

9. "밴드"로서의 캐멀의 범위는 어느 정도이며, Mickey Simmonds는 "Harbour of tear"앨범에 어느 정도 기여했나?

참여한 뮤지션들은 그들의 지울 수 없는 음악적 낙인을 캐멀의 사운드와 음악적 감성에 각인시켰다. 특히 Collin Bass의 수년간 멤버로서의 역활은 확실했다.
Mickey Simmonds의 기여는 매우 큰 기대를 주었지만, 결국 그는 시간이 없었다.

10. 1985년과 1991년 사이의 공백기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나?

레이티머에게 법적인 문제가 있었다.
캐멀은 그들의 첫번째 매니저였던 Geoff Jukes로부터 커미션 문제로 고소를 당했 던 것이다. 유일한 창단멤버로서 레이티머는 1982년부터 87년까지 이러한 일들을 책임져야만 했다.
그리고, 그때 Susan Hoover는 캐멀의 전작 앨범들의 저작료가 지불되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에 레이티머는 Gama 레코드사 (Geoff Jukes와 Max Hole의 레코드사)를 고소하게 된 것이다.
레이티머는 이 두건의 소송에서 모두 승리하게 되지만, 경제적인 이득은 전혀 얻 지 못했다.
그 후 1988년 앤디 레이티머와 그의 아내 수잔 후버는 미국으로 가게 된다.
앨범 "Dust and dreams"는 85년 말쯤 착상을 했는데, 레이티머는 이 앨범을 제작 할 레코드 사를 찾지 못한다.
그래서, 그때 후버와 레이티머는 캐멀 프로덕션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91년 4월에 오리지널 콘셉에서 2번째 파트를 완전히 다시 고쳐서 앨범을 발매하게 된다.
사실상 "Dust and dreams"는 영국, 캘리포니아, 네덜란드 (Ton Scherpenzeel가 사는)에서 녹음되었다.
결국 이 시기에는 새로운 앨범은 선보이지 못하고, 85년부터 91년 사이에 무려 4장의 편집음반이 등장하는 헤프닝이 연출되는 것이다.

11. 캐멀의 미발표 트랙이 있는가?

알려진 바로는 한 곡이 있다.
"River man"이라고 불리우는 곡이다.
이 곡은 헤르만 헷세의 Siddhartha란 책에 기초한 것인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자신의 영혼을 잃어버린 한 젊은이가 자기 자신을 되찾기 위해서 모험을 하게 되 는데, 결국 그가 자신의 영혼을 찾은 곳은 처음 영혼을 잃어버린 바로 그 장소였다 라는 스토리다. (뭔 소린지 알겠수? 파랑새와 비슷한 콘셉이다.)
확실하진 않지만, 이 곡은 언젠가 공식 트랙으로 선보일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12. 앤디 레이티머가 캐멀 이외의 음악을 만든 적이 있는가?

레이티머는 몇몇 프로젝트에 참가했다.
78년에 레이티머는 전 동료였던 Doug Ferguson의 밴드 Headwaiter의 셀프 타이틀 앨범의 몇몇 트랙에 참가했고, '단순히 재미로' 그들과 함께 네덜란드 투어를 가진 바 있다.
또한, 역시 전 동료였던 피터 바덴스의 95년 "Big Sky" 앨범에 수록된 'On a roll"
이란 노래에서 그의 백 보컬을 들을 수 있다.
Ton Scherpenzeel과의 합작으로 10곡 정도의 노래를 만들기도 했지만, 레코딩 된 적은 없다. 앞으로도 이 둘의 합작은 Ton 때문에 성사될 가능성이 적다.
BBC 방송국은 몇몇 캐멀의 음악을 쓴 적이 있는데, 아직도 텔레비젼을 위한 작곡을 해주길 바라지만 아직까지는 발표된 것이 없다.
Antony Phillips와 87년에 몇몇 작품을 같이 만들기도 했다.
레이티머는 역시 Dennis Quinn과 함께 88년에 Philips의 앨범제작을 도와준 일이 있다. 하지만, 서로 거리가 너무 멀기 때문에 Ton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와 다시 공동 작품을 만들 가능성은 희박하다.
레이티머는 또한 Francis Monkman의 앨범 "Dweller on the Threshold"의 몇몇 트 랙에도 참여하였고, Greenpeace 앨범에서는 Manfred Mann 밴드의 Chris Thompson, Hazel O'Connor와 함께 싱글을 만들었다.

13. 왜 캐멀은 상업적 성공을 거두지 못했을까?

이 질문은 주로 캐멀의 골수팬들 사이에서 제기되곤 한다.
어떻게 이토록 환타스틱한 프로그레시브 그룹이 잘 알려지지 않았을까, 하물며 프로그레시브 록 팬들 사이에서도.....
(이 질문에 대해서는 우리나라는 약간 상황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국내 일부 아트록 매니어들은 캐멀이 너무 상업적인 냄새가 난다거나 또는 팝적인 경향 이 강하다는 이유로 배척하는 분위기다. 명반임을 자처하며 90년대 이후 국내에 소개된 음반들중 쓰레기 같은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고 있잖은가? 프로그레시브 록은 결코 컬트가 아님을 알아야 할 것이다. KAYAK 같은 경우도 대단히 뛰어난 그룹이라며 칭송하길래 들어보았지만 결국 캐멀의 아류에 불과했다. 초보자들이 YES나 ELP, GENESIS 같은 밴드들 보다 이태리 밴드들을 먼저 듣게 되는 풍토는 분명 정상적인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이것은 아마도 미스테리로 남을 것이 분명하다.
캐멀의 음반은 무디 블루스나 캐러반 같은 밴드들의 음반을 출반했던 DERAM 레이블 에 의해 배급되었는데, 이들은 상대적으로 성공적인 프로그레시브 밴드들을 보유 했던 EMI나 Charisma, Virgin 같은 레이블에 비해 약점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캐멀은 상업적인 음악을 만드는 것을 그들의 방향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지만, 그럼에도 레코드 회사는 그들에게 강요를 하였고, 결국 밴드의 입장에서는 결코 차트에서 인기를 끌만한 곡이 아닌 싱글들을 회사측에서는 발매하였다.
이런 히트곡을 만들려는 의도는 앤디 레이티머 자신은 아직까지도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Single factor" 앨범에서 가장 명백히 드러난다.
(덕분에 Single factor는 Stationary Traveller와 함께 누구나 가장 친숙히 들을 수 있는 다소 팝적인 음반이 된다. 물론 그렇다고 형편없는 쓰레기는 결코 아니 다.)
또한 상업적인 성공이 없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캐멀은 여러 해동안 훌륭한 투어를 해냈고, 91년에 새롭게 팀을 정비하면서 독립 레이블에서 상당히 성공적인 음반발매를 했다.
캐멀은 팬들과의 개별적인 접촉과 몇년에 한번씩 좀 더 나아지는 앨범들을 발매 하는 것에 더욱 만족하는듯하다.
캐멀에게는 물론 팬들에게도 이것이 가장 필요한 성공이 아닐까?

14. 어떤 앨범이 가장 성공적이었나?

"The Snow Goose" 앨범은 골드 레코드를 탔고, 아직도 잘 팔리고 있다.
캐멀 프로덕션이 발매한 것중에서는 Dust and dreams가 가장 잘 팔렸다.
물론 가장 먼저 발매된 것이라는 이유도 붙긴하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Harbour of tears" 앨범도 예상보다는 좋은 반응을 얻었다.
(국내의 경우에는 역시 단연코 "Stationary traveller" 앨범이 가장 성공적인 앨 범이었다. 가장 먼저 국내에 소개된 음반이기도 하다. 한가지 재미난 사실은 86년 당시 전영혁의 FM 방송을 통해 이 음반이 소개되었을때의 열렬한 지지와는 대조적으로 요즘에는 캐멀의 인기영합을 위한 음반이라도 매도되기도 한다.)

15. 캐멀이 히트 싱글을 낸 적이 있나?

한두번 정도는 명백히 히트 싱글을 목표로 한 것으로 보이지만, 레이티머는 히트 싱글을 낸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에 따르면 그런 것들은 싱글발매를 원하는 레코드 사의 생각이었을 뿐이라고 한다.

16. 어떤 곡이 가장 인기있는 캐멀의 노래인가?

이것은 이렇게 따져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Rhayarder와 Rhayader Goes to Town는 3장의 라이브 앨범과 4장의 편집앨범에 수록 되어 있고, 가끔 라디오 방송에서 리퀘스트 되곤 한다. 그러므로, 이 두 노래가 그 들의 가장 인기있는 노래라고 할 수 있겠다.
가장 있기있는 라이브 노래는 Never let go일 것이다.
이 노래는 3장의 라이브 앨범과 한장의 편집앨범에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라이브 앨범의 타이틀로도 쓰였다.)
또한 Lady Fantasy와 Sasquatch 역시 편집앨범에 잘 수록되는 노래이다.
Freefall, A Song Within a Song, Echoes, Drafted, Lies 같은 노래는 편집앨범과 콜렉션 앨범에 잘 수록되는 편이다.
(개인적으로 Drafted는 매우 좋아하는 노래랍니다.)

17. 캐멀 프로덕션이 뭐지?

- 캐멀 프로덕션은 수잔 후버와 앤디 레이티머가 캘리포니아에 설립한 독립회사이다.
8번 항목에 쓰여있듯이, "Dust and dreams" 앨범의 발매를 위해서 몇년동안 레코드 사들을 찾아보지만 결국 앨범을 발매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들의 레코드 회사를 설립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냈다.
캐멀 프로덕션은 캐멀만을 위해 존재하는 레코드 회사이다.
(캐멀같은 그룹조차도 소속 레코드사를 찾지 못하는 상황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 것인지...쩝.)

18. 캐멀의 노래를 계속 들을 수 있는 것인가? 회사는 잘 되는건가?

- 캐멀이 벌어들이는 모든 수익-즉, 새 앨범의 판매라던가 지난 앨범들의 판매, 라이브와 상품판매를 통한 수입-은 캐멀 프로덕션으로 들어가게 된다.
수잔 후버는 음반제작을 지속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계속 해나가겠 다고 다짐한다.

19. 새로 나올 앨범이 있는가?

그렇다. 레이티머는 이미 새로운 앨범을 위한 작곡에 돌입했다.
이것과는 별도로 Nude 투어를 녹음한 "Camel on the Road 1981"이 나올 것 이며, 캐멀 프로덕션은 멤버들의 인터뷰과 포함된 비디오 앤솔로지를 발매 계획중이다. 새롭게 펼치는 공연의 몇몇 장면도 수록될 예정이다.
(Road 1981 앨범은 이미 발매되었고, 국내에도 라이선스로 나와있다. 아래 게시물 을 통해 전해드린 그들의 또다른 더블 라이브 앨범과 비디오가 선보일 예정이다.
여기서 언급되는 엔솔로지 비디오가 아래의 라이브 비디오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는 정보가 없다.)

20. 캐멀 초보자들에게는 어떤 앨범을 추천할 수 있을까?

- 매우 어려운 질문이다. Camelogue의 메일링 리스트를 관찰해 보면, 캐멀의 팬들은 매우 다양한 의견들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사실이 힌트가 될 수도 있겠다.
여기에 여러 밴드들을 언급하겠다. 이것은 캐멀의 음악이 그들과 같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음악적인 분위기로서 제시 하는 것이다.

o 콘셉트 앨범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 The Snow Goose, Nude, Stationary Traveller, Dust and Dreams, Harbour of Tears.
이 앨범들은 모두 소설이나 단편을 기초로 만든 앨범들이다.
(특히 재미난 앨범은 Nude인데, 태평양 전쟁시 한 무인도에 고립되었던 일본 병사가 전쟁이 끝난지도 모르고 몇십년을 살아왔다는 실화에 근거한 컨셉 이다.)

o 당신이 70년대 중반의 Genesis나 Pink floyd같은 심포닉 프로그레시브 록에 관 심이 많다면, 75년작 Snow Goose와 76년작 Moonmadness가 알맞을 것이다.

o Alan Parsons Project를 좋아하는가? 그들의 대부분의 앨범과 사운드 면에서나 정신적인 면에서 Stionary Traveller와 The Single Factor 앨범은 흡사하다.

o Nektar나 Jethro Tull의 일부 연주곡 또는 Focus 같은 분위기의 오르간과 기타의 상호조화를 이루는 분위기의 밴드들을 좋아한다면, Mirage 앨범과 그들의 데뷔 앨범 Camel을 추천한다.
이 앨범들의 최근 업데이트된 버젼에서는 I Can See Your House 앨범에서 몇 트랙 이 보너스로 들어가 있다.

o Caravan이나 Hatfield and the North를 좋아한다면 Richard Sinclair의 재즈적인 존재감이 느껴지는 Rain Dances를 추천한다. 더불어 Breathless 앨범도 좋다.
만약 위에 언급한 두 밴드의 악기의 상호조화로운 연주를 좋아한다면 Camel, Mirage, The Snow Goose 그리고 Moonmadness 앨범도 괜찮을 것이다.

o 인상적인 기타 연주를 좋아한다면 Moonmadness, Breathless, I Can See Your House From Here, Nude, Dust and Dreams, 그리고 더블 라이브 앨범 Never Let Go를 추천한다.

o 오케스트레이션이 들어간 노래를 좋아한다면, The Snow Goose, Nude, I Can See Your House From Here, Harbour of Tears가 좋을 것이다.

o Clannad와 Enya를 좋아하는가? 아일랜드의 음악에 기초한 Harbour of Tears가 만족스러울 것이다.

o 라이브 레코드 : "Never Let Go" 더블 라이브 앨범이 사운드의 품질이나 뮤지션들의 테크닉의 면 에서 가장 뛰어나다. 이것은 프로그레시브 록의 뛰어난 라이브 앨범으로 손꼽 아도 부족하지 않으며, 만약 당신이 캐멀의 음악을 들어본 적이 없다면 이 음반 부터 시작해도 좋으리라는 생각이다.
(Pressure points 라이브도 매우 우수한 수작이다. 단 시간이 짧은게 흠.)

o 가장 논란꺼리가 많은 앨범 : Breathless, Stationary Traveller

o Best Video : 캐멀의 현재 발매된 비디오는 단 2종에 불과하다.
1시간 정도의 러닝 타임을 가진 Total Pressure를 추천한다.
화면과 음질도 괜찮은 편이다. 물론 이것은 또다른 비디오와 비교할때 약간 더 나은 정도의 수준이다.

o 콜랙션 앨범으로 산다면 어떤 것이 좋을까?
A Compact compilation을 추천한다. 이 음반은 74년부터 77년 까지의 밴드의 음악을 모은 좋은 컴필레이션이다.
Echoes는 좀 더 다양한 시기의 음악을 담고 있다.
하지만, 콜렉션보다는 정식 릴리즈된 음반을 구입하는 것을 권한다.

o (개인적인 추천 : 가볍게 시작하려는 사람은 Stationary Traveller나 Single Factor로 시작하면 좋다. 그리고, 좀 진지한 분위기를 원 한다면 Snow Goose를, 서정적인 분위기를 원한다면 Harbour of tears를 추천한다.)

21. "캐멀"이라는 담배회사의 이름과 로고와는 무슨 상관인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앞에서 밝혔듯.....)
Mirage 앨범의 영국발매본의 재킷은 캐멀 담배곽을 모방한 바 있고, 캐멀 프로덕션 의 낙타 로고는 담배회사의 것과 유사해 보이긴 한다.

22. 왜 종종 Caravan이 캐멀과 함께 거론되는가?

- 비록 캐멀은 켄터배리 밴드는 아니었지만, 꽤 오랫동안 Soft Machine, Caravan, Gong, Hatfield and the North, National Health 등과 같은 음악 필드에 속한 것으로 간주되어오곤 했다. 왜냐하면 캐멀의 초기 음악적 스타일이 무언가 그들과 공통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1977년에 Richard Sinclair (전 Caravan, Hatfield and the North의 멤버)가 베이 스 주자로 라인업에 참여한 바 있고, 78년에 Jan Schelhaas와 Dave Sinclair (두 명 모두 캐러반의 키보드 연주자)가 밴드에 참가하여 같이 라이브 투어를 가진 바도 있다. 이러한 캐러반과의 연계는 주목할 만한 것이다.
캐멀은 또한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와도 매우 연관이 있는데, 그 음악적 색깔도 그러하려니와 알란 파슨스의 객원멤버들인 David Paton, Chris Rainbow, Stuart Tosh 등이 캐멀의 정식앨범에 참가하거나 라이브에 참가한 바 있다.
(특히 Chris Rainbow의 참가는 보컬의 능력면에서 한 수 아래임을 부정할 수 없는 레이티머의 한계를 극복해주고 있다.)

끝맺으며.....

- ELP 보다 Latte E Miele나 Triumvirat가 더 높게 평가되는 우리네 상황을 보면, 어쩌면 이런 기형적인 국내 프로그레시브 록 문화는 조작에 의한 것은 아닐까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마치 명반보다는 희귀음반에 더 집착하려는 경향과 마찬가지로......
이런 풍토 속에 캐멀도 평가절하되고 있는 그룹 중 하나라 아쉽기만 하다.
팝적인 경향이라.....
프로그레시브 록 안에서도 팝적인 경향은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다.
어쩌면 팝적인 경향이라는 말은 "서정적인 경향"의 확대해석은 아닐까?
좀 더 넓고 유연성있는 음악듣기의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을 필자는 캐멀의 경우에 있어서 여실히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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