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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편집일: 2011-6-26 9:57 pm (변경사항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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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tish Super Groups / 이성에 기초한 광기의 음악
1. King Crimson
2. Robert Fripp
3. “In The Court Of Crimson King”
4. “In The Wake Of Poseidon”
5. “Lizard” – 소리의 상생(相生)
6. “Island” – 묘사적 음악에의 시도
7. 들어가기에 앞서
8. 새로운 킹 크림즌의 결성
9. Starless and Bible Black – 텍스춰(Texture), 힘 그리고 아방가르드 록
10. Red – 타락한 천사의 유언

1. King Crimson

얼마전 평소 가깝게 지내던 한 음악작가의 방을 오랜만에 방문했을 때의 일이었다. 방안을 가득 메운 음악의 향내음에 서서히 도취되며 이런저런 세상 사는 이야기를 주고 받다, 그 분의 제자인 한 촉망받는 음악학도와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평소 知音이 아니면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그다지 하기 싫어하는 (음악의 주변 이야기는 할지언정) 필자였지만 화제의 빈곤으로 자리가 조금은 부담스러워짐을 느껴 조심스럽게 그 음악학도에게 질문을 하였다.

“졸업을 하시면 무엇을 하실 생각이신가요?”

“계속 순수음악을 할 생각입니다.”

그의 스승의 음악과 생각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필자에게 그 대답은 그야말로 쇼크였다.

“죄… 죄송하지만 순… 수음악이라면… 무엇을…”

“오락적인 것을 배제하고 음악적인 미를 추구하는 동시에 작가의 욕망을 개입하지 않고…”

그는 자신있게 대답하였다.

오락적인 것의 배제, 순수한 음악, 음악적인 미, 맙소사! 이것이 국내 음악계의 현실이다. 오락적인 것을 기대하지 않는 청자가 있단 말인가? 음악적인 미란? 욕망이 개입되지 않은 작품은 어디에 있을까?

신사, 숙녀 여러분 지금부터 여러분께 불순한 음악, 욕망에 가득찬 추한 음악을 소개합니다. Mr. Fripp & KingCrimson!!!

잠시 쟈크 데리다(Jacque Derrida)씨가 잘 쓰는 전술을 써보았다. 권력과 이분론의 ‘위험한 정사’를 막고 이분론의 경계를 해체하기 위해서는 언어의 전쟁놀이에서 핍박받고 소외받는 우리의 미운 오리새끼를 키워줘야 한다나 어떻다나… 이것과 비슷한 생각을 가지는 우리의 반인간주의자들, 그들은 진정 인간주의자들이다. 이땅에 사는, 붉은 피가 흐르는 육체를 가진 우리 인간을 최고로 삼는 인간주의자들이다.

반인간주의 만세! 반음악주의 만세! 아니다, 무엇무엇주의는 너무 권력지향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반주의주의’ 만세, 이것으로 서언 -끝-

“킹 크림슨의 기본적인 목표는 무정부상태(Anarchy)를 조직화하고 무질서(Chaos)의 잠재적인 힘을 이용, 갖가지 다른 영향을 상호 작용시켜 이들 간의 엄밀한 힘의 균형 상태를 발견하는 것이다.” - Robert Fripp, 1969년

2. Robert Fripp

1946년 영국의 남부지방인 도어셋(Dorset)에 위치한 윔본(Wimborne)에서 부동산업자의 아들로 태어난 Fripp은 부르죠와계급 특유의 보수적이고 엄격한 가정에서 자라게 된다.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상속인으로서의 조건을 만족시키게 하기위해 전통 영국인의 엄격한 신사도를 주입시키려 했지만 그는 이에 대해 반발심을 갖고 있었고 행복과는 거리가 먼, 소외감으로 가득찬 소년시절을 보냈다.

이러한 성장과정은 후에 그의 음악적 성격과도 많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그의 연주하는 모습을 본 사람들이라면 아마도 쉽게 수긍이 갈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연주라는 기술에 대한 엄격함과 편집적으로 보이기까지하는 완벽 지향성, 그리고 철저한 훈련에 대한 강조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이다. 하지만 연주라는 행위를 통해 그의 몸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소리에서는 그의 몸을 감싸고 있는 억압적인 기구들에 대한 분노로 가득찬 파괴력이 느껴진다. 훌륭한 음악가는 자신의 외부에 존재하는 것과 자신이 독립된 것이라고 보이 않는다. 따라서 창조의 작업에서 일차적으로 이루어져야하는 것은 자신을 파악하는 것이다. 그것이 심도깊게 이루어질 때 자신에 대한 파악은 세계에 대한 이해와 일치하게 된다. 그들은 자신의 병을 진단하고 그 병을 치유하기 위해 소리를 만들어 낸다. 이러한 작업이 청자에게 어떠한 영감을 던져주거나 기쁨을 안겨줄 수 있는 것은 청자 역시 분명히 작가와 유사한 병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작업을 꾸준히 그리고 효과적으로 해온 작가로 여겨지는 사람은 Roger Waters, 그리고 Robert Fripp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음악적 실험은 기존의 소리가 그 효과를 이미 상실했거나 우리들 사이에 새로운 변종 바이러스가 나타났을 경우 대처하기 위한 새로운 소리의 제조방법과 그 효용성을 타진해 보기 위한 것이다. 좋은 의사로서의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제대로 진단할 수 있는 직관이나 기술적인 그 무엇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전에는 전자가 우선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병의 원인을 파악하기에 우리와 우리 주변이 너무나 복잡하게 얽혀있는 오늘날에는 후자의 중요성을 무시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Giles, Giles & Fripp

이 앨범의 자켓을 보자. 세명의 영국 신사들이 바보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애교를 부리고 있다. 마치 허름한 동네 사진관에서 포즈를 취한 듯한 이 사진. 바로 King Crimson의 전신이 된 그룹 자일스, 자일스 & 프립(Giles, Giles & Fripp)의 데뷰작이자 유일한 앨범, ‘The Cheerful Insanity of Giles, Giles & Fripp’의 자켓 사진이다. 뒷편에 서있는 약간 마른 듯이 보이는 콧수염난 사내가 드럼을 담당하는 마이클 자일스(Michael Giles), 왼쪽에 검은 모자를 쓰고 있는 선량하게 보이는 사람이 마이클 자일스의 동생이자 베이스를 담당하는 피터 자일스이다. 그리고 오른편에서 아주 흡족한 미소를 짓고 있는자가 바로 ‘우리들의 친구’ 로버트 프립이다.

1968년 9월 18일에 발매된 이 앨범은 이에 앞서 발표된 싱글의 앞면을 장식하는 ‘One In A Million’, 그리고 뒷면의 ‘Newly-Weds’를 각각 A면의 세번째와 두번째 곡으로 수록하고 있다. 앞면은 ‘The Sega of Rodney Toady’이라는 프립이 설정한 이야기를 토대로 한 콘셉트 형식을 지니고 있다. 내용은 지극히 일상적이며 유머러스하고 이러한 이야기를 보컬과 중간중간의 나레이션으로 전개하고 있다. 첫곡인 ‘North Meadow’는 아주 평범한 영국적인 팝으로 시작하지만 이윽고 전개되는 기타연주에서 22세에 이미 어느 정도 독자적인 경지에 다다른 프립의 방법론을 엿볼 수 있다. 소년시절 익힌 재즈 기타주법과 클래식 기타주법을 혼용하면서 정확한 리듬감으로 핑거링하는 정교한 그의 주법은 제3기 킹 크림슨 (앨범 ‘Discipline’ 이후의 킹 크림슨)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그의 연주 스타일과 매우 흡사한 면모를 지니고 있다. 특히 이러한 경향은 프립이 자곡한 ‘Suite No.1’에서 더욱 잘 나타난다. 이곡과 마찬가지로 다른 곡들도 모두다 명랑한 곡조로 진행되면서도 중간중간에 의표를 찌르는 예상외의 전개로 그들이 당시에 이미 예사로운 그룹이 아니었음을 느끼게하여 ‘될성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경구를 실감케 한다. 전체적으로 팝록적인 구성과 재즈, 그리고 사이키델릭한 소리가 혼합된 이 앨범에 대해서 마이클 자일스는 얼마전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회상하고 있다.

Q: 당시의 리더는 당신이었습니까?

M: 그렇지는 않아요, 세명 모두 균등한 위치에 있었지요.

Q: 당시 관심을 가졌던 밴드와 G, G & F의 사운드 콘셉트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M: 크림, 비틀즈, 죤 매클러플린이 했던 것들, 아무튼 록, 재즈, 블루스라고 하는, 분류된 것이 아닌 무언가 다른 것을 하고 싶었어요. 이것에 유머감각을 가미한, 세 사람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음악, 누구도 카피하지 않고 자기자신 안에 있는 그 무엇을 끄집어 내고 싶었습니다.

이 앨범의 완성 직후 새로운 멤버로서 이안 맥도날드 (Ian McDonald)와 당시 그의 연인이었던 쥬디 다이블(Judy Dyble)이 가입한다. 기타, 키보드, 섹스폰, 클라리넷, 시타르 등 많은 악기들을 능숙하게 다루는 이안 맥도날드에게 마이클과 프립이 유혹의 손을 뻗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또한 그는 이후 당시 그의 친구이자 시인인 피터 신필드(Peter Sinfield)를 소개하여 이후 크림슨의 음악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끼치게 한다. 포크록 그룹인 페어포트 컨벤션의 초기 멤버였던 쥬디 다이블이 이 그룹을 탈퇴하고 (이후 페어포트 컨벤션은 당시 스트롭스와 함께 활동하던 샌디 데니(Sandy Denny)를 영입하여 아일랜드 레이블에서 “What We Did On Our Holydays”를 발표하여 성공을 거둔다.) 프립의 작업에 참가하게 된 것은 고작 1개월이었다. 프립의 지나칠 정도의 세밀한 성격을 견디지 못하고 탈퇴한 그녀는 그동안 킹 크림슨의 데뷰앨범에 수락된 곳과 같은 곡인 ‘I Talk To The Wind’의 보컬에 참여하는데 포크록풍의 어쿠스틱한 앙상블이 곡 전체를 감싸는 이 곡은 킹 크림슨의 데뷰앨범에 실리지 않고 (대신 그렉 레이크가 보컬로 참여한 것이 실리게 된다) 후에 발표되는 킹 크림슨의 베스트 앨범인 “The Young Persons Guide To King Crimson”에 수록된다. 프립과의 작업을 그만둔 쥬디 다이블은 이후 기타리스트인 재키 맥콜리(Jackie McAuley)와 알게 되어 포크록 그룹 트레이더 혼(Trader Horne)을 결성, 명반 “Morning Way”를 발표한다(아트록 3호 커버아트 참조).

이후 피터 자일스가 탈퇴하고, 프립은 당시 유라이어 힙의 전신 그룹이자 슈퍼그룹인 갓즈(Gods)에서 활동하던 보컬리스트겸 베이스 주자인 그렉 레이크를 가입시켜 킹 크림슨을 결성한다.

3. “In The Court Of Crimson King”

- 완벽한 구조의 미학

1969년 10월 10일, 이 날은 아마도 많은 진보적인 록 작가들에게는 매우 의미깊은 날일 것이다. “In The Court Of Crimson King”의 발표. 록 역사상 가장 진보적이고 완벽한 앨범으로 기록될 이 작품이 발표될 때, 각 음악지의 평론가들은 다음과 같이 당시의 충격을 이야기하고 있다. 당혹감과 감격에 휩싸여서…

“궁극적인 앨범… 가장 독창적인 집단에 의해 쓰여져서, 편곡되고 연주된…”(International Times지).

“무시무시한 걸작이다”(Pete Townshend: The Who의 리더).

“킹 크림슨의 음악에는 현재 가장 자극적이고 독창적인 다양성과 기교가 있다. 편곡된 곡과 즉흥연주 사이의 균형을 지키는 그들에게 재즈니 팝이니 하는 분류는 무의미한 것일 것이다”(Listener지).

“70년대의 음악이 어떻게 될 것인지 알고싶은 사람은 이 작품을 들어보라. 진짜로 대단한 것이다.”(Daily Sketch지)

놀라움과 공포에 가득찬 얼굴 표정을 그로테스크하게 묘사한 커버아트 만큼이나 이 작품은 당시에 충격으로 받아들여 졌다. 당시 영궁의 록계에서 일어나기 시작한 여러 실험들 즉, 기존의 소박한 사운드에서 벗어나기 위한 작업들, 멜로트론을 사용한다든지 오케스트레이션을 가미해 록 음악의 경계를 확장하려 하는 것들, 기존의 ‘미’에 대한 허위의식을 부정하기 위한 소리의 일그러짐과 균형의 파괴, 복잡한 편곡과 곡구조를 통한 제한된 시간 속에서의 다양성 확보 등… 이러한 일련의 작업들이 서서히 여러 작가들에 의해 시도될 무렵, 킹 크림슨의 이 첫번째 작품은 그들 모두를 아연실색케 할 정도로 이 모든 것들을 완벽하게 결합한 것이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의미는 바로 ‘구조와 균형의 미학’이다. 거대한 건축물과 같이, 작품을 구성하는 하나하나의 소리는 견고한 틀 속에 묶여져 있다. 가까이서 그 소리들을 들여다 보면 그것들은 새롭고 낯선 것이며 어떤 것은 찌그러져 있고 어떤 것은 너무도 소박한 나머지 촌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것들을 멀리서 바라보면 그것들은 휘황찬란하게 빛을 발하고 안정되게 서로를 받쳐주고 있다. 서로 흩어질 것만 같은 이질적인 소리들을 서로 견고하게 묶여져 있게 하는 것은 바로 곡의 구조이다. 그 구조는 기존의 것보다 복잡하지만 과거의 것을 차용하여 모아놓은 것(심포니, 재즈, 블루스, 록, 20세기 전위 음악, 민요 등)이기 때문에 견고할 수 밖에 없다. 청자에게 있어 음악적 구조의 안정성은 사실 건축과 같이 역학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 당시 청자의 경험과 교육에 기반한 ‘시간속에서 소리의 위치에 대한 예상 가능성’, 그리고 ‘한 시간 축에서의 화성이 기존하는 익숙함에서 얼마나 벗어나지 않는가’에 의존한다(이것은 물론 ‘잘 짜여진 구조’와는 의미가 다르다). 로버트 프립은 아마도 이것을 너무나도 잘 간파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가 킹 크림슨의 기본 목표로 삼은 ‘무질서한 것들을 조직화하여 상호간 힘의 균형을 발견한다는 것’은 이러한 의미에서는 ‘대중속에 자리하는 실험’을 위한 것이다.

국내에서는 일반적인 청자에게까지 익숙한 명곡 ‘Epitaph’를 비롯, 얼마전 TV 광고에 쓰이기도 한 “The Court Of Crimson King’등 모두 5곡으로 채워진 이 앨범은 이듬해 2월 둘째주, 멜로디 메이커지에서 비틀즈의 “Abbey Road”를 제치고 정상을 차지하게 된다. 이 앨범에서 프립의 기타는 자일스, 자일스 & 프립에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고, 신중하게 전개된다. 때로는 공격적으로, 때로는 섬세하게 펼쳐지는 그의 연주는 꼼꼼히 짜여진 작품의 컨셉트 하에서 적절하게 쓰여진다. 그 컨셉트의 주가 되는 것은 ‘꿈과 환상, 그리고 밤’이다. ‘Moon Child’에서 달이 나타내는 이미지는 여성스러움, 밤, 악마, 그리고 꿈이다. 피터 신필드에 의하여 쓰여진 이 가사는 직접적인 내용의 전달보다는 하나의 형식으로서 시와 같이 상징적인 이미지의 전달에 주력한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이 작품은 추상적이고 반현실적이 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이미지에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된 악기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멜로트론이다. 기존의 소리가 아니면서도 지금의 신세사이저 같은 기계적인 음도 아닌 멜로트론의 소리는 이러한 비현실적인 밤과 신화의 이미지를 전달하는데 아주 효과적으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효과를 간파한 프립은 이후에도 이와 비슷한 컨셉트를 전개할 때는 하상 멜로트론을 사용하게된다.

4. “In The Wake Of Poseidon”

- 구조의 고리를 끊으며

미국 투어를 마치고 온 킹 크림슨은 심각한 분열의 징조를 보이게 된다. 그렉 레이크는 미국에서 만나게 된 나이스(The Nice)의 건반주자 키스 에머슨(Keith Emerson)을 만나게 되고 그의 놀라운 건반연주에 매료되어 이후 그와 함께 새로운 그룹을 결성하기로 마음먹게된다. 이안 맥도날드와 마이클 자일스 역시 그룹을 떠날 결심을 하게 되는데 이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고 이후 인터뷰에서도 멤버 각자의 이야기가 다르지만 가장 큰 이유는 로버트 프립이 이후 작품의 변화에 그들이 적합치 않다고 생각했고, 이안과 마이클 역시 크림슨이라는 한 집단의, 아니 프립의 밴드를 위하여 자신의 자유를 볼모로한 채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음악의 완벽성을 위하여 희생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것이었다. 결국 1기 크림슨은 한장의 앨범을 남긴 채 사실상 붕괴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당시가 두번째 앨범의 녹음을 시작할 단계였다는 것이다. 이때 새로운 멤버로는 보컬에 프립이 이전 League Of Gentlemen이라는 밴드에서 같이 활동했던 고든 하스켈(Gordon Haskell), 섹소폰 주자로 Circus라는 그룹에서 활동했던 멜 콜린스(Mel Collins), 그리고 드럼에는 앤디 맥클록(Andy Mc Culloch)이 결정되었다. 하지만 앤디 맥클록은 일신상의 이유로 정식 멤버로서 녹음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고 고든 하스켈은 게스트로서 단 한곡에만 참여한다. 결국 두번째 앨범 역시 그렉 레이크가 보컬을, 그리고 마이클 자일스가 드럼을 맡게 된다.

1970년 5월 9일 크림슨의 두번째 앨범 “In The Wake Of Poseidon”이 발표되었다. 이 앨범이 발표되자 각 음악지들은 찬반양론으로 갈라지게 된다. ‘이전에 비하여 절제되고 안정된 연주를 들려준다’라는 칭찬과 ‘이전 앨범의 완전한 카피’라는 혹평으로 나뉘어진 이 앨범은 이전의 작품과 흡사한 앨범 구성과 곡 전개에서의 유사함에도 불구하고 몇가지 특이한 점이 눈에 뜨인다. 주목해야 할 것은 재즈계에서 활동하던 키스 티펫(Keith Tippet)의 참가이다. 당시 22세의 천재 재즈 피아니스트 키스 티펫과 로버트 프립과의 만남은 키스 티펫이 소프트 머쉰의 로버트 와이엇트와 함께 프로젝트 형식의 재즈 오케스트라 Centipede를 기획하던 중이었다. 당시에 협력을 부탁받은 프립은 키스 티펫과 이야기하던 도중 서로의 음악관이 상당히 비슷함을 발견하여 이후 크림슨의 작품에 참여할 것을 요청하고, 키스 티펫은 이에 응하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사건은 단순히 키스 티펫이 게스트로 참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크림슨의 음악에 상당히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아마도 크림슨의 역사상 프립이외의 다른 한 멤버가 이렇게 큰 영향을 끼친 예는 없을 것이다). 록계에서 활동한 것이 아니라 브리티쉬 프리재즈계에 몸담고 있던 키스 티펫을 크림슨에 영입한 프립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당시 프립은 크림슨 음악에서의 너무나 안정된 구조가 소리를 구속하여 그 소리 자체가 본래 가지고 있던 힘의 역동성을 억제한다고 느꼈을 것이다. 안정된 구조속의 소리는 본래 작가가 그 ‘소리 자체’에 역점을 두어 작품을 만들지 않는 한 청자의 주관과 상상력에 의하여 변형되거나 전이될 수 있는 여력을 가지고 있지 않고, 허락하지도 않는다. 이것은 앞에서 서술한 킹크림슨의 기본목표와 위배되는 것이다. ‘무질서의 힘’을 이용하기에는 그가 그 무질서를 써먹기 위해 발휘한 응집력이 너무나 컸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본래 무질서인 소리들이 응집된 이후에도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미 박제화된 구조를 흐트러뜨리고 거기에 인간이 원래 가지고 있던 ‘몸의 임의성’이라는 요소를 첨가해야 한다(이전의 아트록 매거진에서 약간 언급한 바 있지만 20세기 음악에 종종 쓰여졌던 수학적 임의성은 그들이 아직도 피타고라스주의자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수학적 세계관으로 바라본 시계에는 정지와 존재만 있고 흐름과 생성은 없다. 따라서 본래 임의적인 인간이 끼어들 자리는 없다). 이러한 프립의 의도에 가장 적합한 것은 재즈, 그것도 프리재즈였던 것이다.

이 앨번에 수록된 ‘Cat Food’에서 우리는 이러한 크림슨의 변화를 실감할 수 있다. 예민한 청자라면 아마도 이 곡의 앞부분에서 키스의 피아노 연주만 빼고 보았을 때 그것은 예전의 곡과 그다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안정된 구조 속에서 키스의 피아노 소리는 종횡무진 움직이며 그 구조의 견고한 고리를 하나하나 흐트러 뜨린다. 바탕이 되는 연주의 코드와는 무관한 진행으로 다른 소리에 힘을 불어 놓고 이를 프립의 기타가 돕는다. 이러한 경향은 후술할 그들의 세번째 작품인 “Lizard”에서 더욱더 선명하게 드러나며 그러한 의미에서 “In The Wake,,,”는 첫번째 앨범에서 세번째 앨범으로 한발짝 더 다가가기 위한 교두보적인 작품이다. 이 다음곡인 ‘Devils Triangle’에서도 반복되는 리듬(마치 라벨의 ‘볼레로’를 연상케하며 그만큼 섹시하다. 물론, 이곡은 홀스트의 ‘화성’에 기초한 것이다.)과 일정한 선율을 반복하는 멜로트론 음향(Great!!) 속에서 키스의 피아노는 제 할 바를 성실히 수생하고 있고 급기야는 프립의 기타와 함께 완전한 카오스로 치닫게 된다.

‘카오스’, ‘코스모스’는 본래 ‘카오스’인 것이었다. ‘코스모스’는 단지 권력을 지향하는 인간의 관념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다. 그들을 체포하지 말아라! 소리에 대한 죄책감이었을까? 아니면 소리의 원래 모습을 파악한 프립의 애정이었을까? 아무튼 음의 자유와 그 음 본래의 힘이 약간이나마 허락된 작품, 그것이 바로 크림슨의 두번째 앨범 “In The Wake Of Poseidon”이었다.

5. “Lizard” – 소리의 상생(相生)

세번째 앨범 “Lizard”에 대한 계획에 대해서 프립이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은 “In The Wake…”가 발매된 5월 초순부터이다. 프립은 당시 멜로디 메이커지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다.

“금주에 나는 지하의 리허설실에서 새로운 앨범을 위한 작곡과 편곡을 시작했다. 기본적인 멤버는 전 작품과 비슷할 것이지만 저번보다 많은 뮤지션들을 쓸 예정이다.”

“Lizard”의 라인업은 로버트 프립, 멜 콜린스, 앤드류 맥클록, 고든 하스켈, 게스트로는 키스 티펫과 그의 그룹 멤버, 그리고 예스의 존 앤더슨이었다. 사실 존 앤더슨이 프립을 만나게 된 것은 예스의 새로운 기타리스트로 프립을 영입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프립은 이를 정중히 거절하고 이후 존 앤더슨은 또다른 천재 기타리스트 스티브 하우를 가입시켜 새로운 앨범을 준비하게 된다.

“Lizard”의 녹음이 완료된 것은 그해 1970년 10월 3일, 이 앨범은 우선 영국에서 12월 11일에 발표된다. 첫곡은 ‘Circus’. 나직하면서도 섬세한 고든 하스켈의 보컬이 키스 티펫의 일렉트릭 피아노의 선율에 실려나오면서 시작되는 이 곡은 정교하기 이를 데 없는 프립의 기타와 멜로트론의 물결, 몽환적인 키스의 일렉트릭 피아노 등이 강과 약 사이를 오고 가며 균형을 잡아가고 있는데, 그 균형의 양상은 이미 잡혀진 구조에 의한 타율적인 것이 아니라 각 연주의 소리들에 의한 자율적인 것이며, 고정된 것이 아니라 각 파트가 힘을 달리하며 변화하는 것이었다. 프립의 목표는 이제 어느 정도 성과를 이룬 것으로 보여진다. 크림슨 음악이 확실히 바뀌었음을 느끼게 해주는 것은 그 다음곡인 ‘Indo-or Games’와 ‘Happy Family’이다. 우선 고든 하스켈의 목소리는 과거 그렉 레이크의 그것에 비해 거칠고 힘을 가지고 있어 다른 악기들의 소리와 힘겨루기를 할만한 것이었다. 프리재즈적인 요소가 짙게 나타나는 이들 곡에서 이제는 어떤 억압의 고리고 끊어진 듯, 각 연주가 이전의 곡에서 보여준 ‘균형’보다 제 힘을 발휘하기에 여념이 없는데도 가식적으로 느껴지지 않고 자연스러우며 유쾌하다. 특히 멜 콜린스의 플룻과 키스의 건반연주에서 각 소리의 자유분방한 기를 마음껏 느낄 수 있다. 여기에서 프립의 기타는 이전의 곡들에 비해 큰 역할은 하지 않지만 재즈 스타일로 다가오는 그의 연주는 분명히 독립되어 있으면서도 다른악기와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아마도 이는 당시 프립의 이야기를 살펴보면 보다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나는 기타리스트라기보다 음악가이고 싶다. 킹 크림슨에 있어서 기타연주라는 것은 전체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나의 역할은 각 상황에 따라 각각의 파트를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것이다.”

B면의 곡들은 “Lizard”라는 제목하에 조곡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존 앤더슨 특유의 보컬이 다른 연주와 함께 색채감있게 전개되는 ‘Prince Rupert Awake’, 한 멜로디 라인과 리듬 하에서 각 파트가 제 나름대로의 목소리와 움직임으로 서로를 돕는 ‘Bolero’, 격전의 전야를 내용으로 시중 긴박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The Battle Of Glass Tears’, 특히 이 곡 끝부분에서 연주되는 프립의 기타는 이후 그의 기타소리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짐작케 한다. 이 앨범은 수많은 연주자와 악기로 이루어진 작품이기 때문에 자칫 산만하다는 느낌을 줄 수 있으며 그것은 규격화된 곡에 익숙한 청자들에게는 일면 당혹스러운 것이다. 이 앨범의 테마는 ‘소리의 相生’이며 아마도 프립은 이를 시험하려 한 것 같다.

6. “Island” – 묘사적 음악에의 시도

“Lizard”가 발매된 직후 매력적인 보컬리스트였던 고든 하스켈은 솔로활동을 이유로 탈퇴하고 드러머인 앤드류 맥클록 역시 탈퇴한다. 고든 하스켈은 이후 솔로앨범 “It Is And It Isn’t”를 발표하고, 앤드류는 Greemslade에 가입하게 된다. 프립은 새로운 보컬리스트를 구하기 위해 오디션을 개최하는데 이때 참여한 사람 중에는 이후 록시 뮤직을 결성하는 브라이언 페리도 있었으며 그의 보컬에 강한 인상을 받은 프립은 나중 E.G. 프로덕션에 록시 뮤직을 강력히 추천했다고 한다. 보컬리스트로 결정된 사람은 당시 Mirrors라는 무명 그룹의 멤버였던 보즈 버렐(Boz Burrel, 본명은 Raymond Burrel) 이었다 (재미있는 일화로 그 동안의 관례에 따르면 크림슨에서는 보컬리스트가 베이스 키타도 함께 담당해야한다. 하지만 당시 보즈는 베이스는 손도 대 보지 못한 상태. 이때 걱정하는 보즈를 프립이 잘 달래며 하나하나 처음부터 가르쳐 겨우 베이스 연주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드럼에는 Bonzo Dog Band의 Neil Innes가 참여했던 그룹 World에서 활동하던 Ian Wallace가 맡게 되었다. 나머지 멤버는 저번과 동일하며 이번에도 역시 키스 티펫과 그의 친구들이 참여했다.

1971년 10월, 크림슨은 새 앨범의 녹음을 마쳤고 그 달 16일 사운드지는 다음 앨범이 “Island”란 타이틀로 발표될 것임을 알리는 기사를 실었다. 그리고 12월 3일 네번째 앨범 “Island”가 발표 되었다. 이 앨범의 겉표지에는 사수좌의 삼열성운의 사진이, 그리고 레코드를 담는 또하나의 자켓에는 피터 신필드의 몽환적인 색채의 그림과 Robert Ellis가 찍은 그들의 라이브 모습이 묘한 조화를 이루면서 담겨 있는데 미국에서 발매된 것은 피터 신필드의 그림이 겉표지에 담겨있다 (꽤 오래된 일이라고 생각되는데, 국내에서 이 앨범이 해적판으로 돌아다닐 때 두가지 표지의 해적판이 모두 등장해, 한때 국내 음악 애호가 사이에서는 어느 쪽이 오리지날 표지인지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이 앨범을 접한 당시의 크림슨 애호가들은 아마도 약간의 당혹감을 느꼈으리라 여겨진다. 그전까지의 작품들이 청자에게 던져주던 충격이 이 작품에서는 상당히 약해졌기 때문이다. 그 정연하고 깔끔한 앨범 전체의 분위기는 당연히 크림슨의 엔트로피가 더욱 증가하리라고 기대했던 팬들에게는 적지 않은 실망감을, 그리고 당시 일반적인 아트록 팬들은 그 친근한 소리에 많은 호감을 나타냈을 것이다. “Lizard”가 ‘소리의 상생’을 주제로 하여 그 소리들의 기가 마음껏 서로 부닥치고 어우러지도록 만들어진 것이라면, 이번 작품은 그 소리들이 모두 외딴 ‘섬’에서 안식을 취하고 있는 느낌이다. 그전의 긴장과 이완, 그리고 그 사이에서 소리의 카오스는 전혀 찾을 수 없다. 구조는 이전과 같은 안정된 양상을 취하고 있으나 1집이나 2집과 같은 ‘도입 – 전개 – 절정 – 결말’이라는 전형적인 드라마틱 심포닉 록의 구조는 가지고 있지 않다. 시종일관 계속되는 담담한 전개로 인하여 좀더 강렬한 것을 원하는 청자에게는 지루함을 줄지 모르나 그 조용히 움직이는, 靜의 소리에 대한 프립의 시도는 과거 陽의 소리에 대한 陰의 소리에의 탐구이며, 강한 소리들이 균형보다는 서로간의 충돌을 야기함을 경험한 프립으로서 이는 당연한 귀결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陰의 소리에 대한 실험은 이후 브라이언 에노와의 합작 “No Pussyfooting”이나 “Evening Star”에서 더욱 더 구체적으로 이루어진다).

Harry Miller의 String Bass 연주로 시작되는 ‘Formentera Lady’. 멜 콜린스의 플룻. Bass는 출렁거리는 바다의 물결을, 그리고 플룻은 그 바다위를 맴도는 새를 묘사한다. 이윽고 등장하는 보즈의 보컬은 이전 보컬리스트들의 그것보다 여성적이다. 바다는 어머니의 상징이며 그 속의 섬은 기다림의 상징이다. 그래서 섬은 안식과 외로움을 가지고 있다. 크림슨의 음악이 이처럼 회화적으로 묘사된 적은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었다. 과연 음악은 그림과 같이 묘사할 수가 있는가? 정답은 ‘있다’이다. 하지만 그 묘사가 나타내는 것은 그림과 같이 한정되어 있지 않다. 청자의 느낌과 상태에 따라 그 그림은 마음대로 변형될 수 있는 것이다. 드뷔시의 묘사가 애매모호하고 꿈결같으며, 전설을 이야기 함에 비하여 크림슨이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그림은 지극히 사실적이다.

이윽고 다시 크림슨은 담담한 비트로 뱃사람의 이야기를 한다. ‘Sailors Tale’. 거기에는 출렁이는 바다의 긴장이 있고 거대한 물로기와의 싸움도 있다. 싸움에서 지친 어부들은 햇빛이 쨍쨍 내리쬐는 바다 한가운데서 수평선을 바라본다. 그리고 다시 바다, 그리고 물고기와의 싸움. 프립의 기타는 이 모든 것을 묘사한다. 여기서 멜로트론의 역할은 이 곡이 단지 묘사가 아닌 ‘이야기’가 되게 하는데 있다. 프립이 멜로트론을 쓰는 것은 그 곡이 ‘劇’의 느낌을 주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 앨범의 특징은 바로 ‘내용’ 중심의 음악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피터 신필드가 쓴 가사는 이야기라기 보다는 시이기 때문에, 혹은 이야기 같은 시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이 이야기일망정 그 시를 읽는 이에게 많은 시각적인 상상력을 보여주기 때문에 (‘때문에’가 세번이나 쓰였지만 세가지 이유나 원인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여기서 보여주는 크림슨의 음악은 지독히도 시각적이다. 그 색깔은 바랜 사진빛이다.

크림슨 음악중에서 가장 인간적이고 파퓰러한 전개를 보여준 곡으로 기억될 ‘Ladies Of The Road’. 마치 비틀즈의 후반기 음악을 듣는 듯하다. 세상에! 크림슨 음악중에 이런 곡도 있습니다. 바로 ‘Prelude: Song Of The Gulls’. 바다를 바라보며 그 무언가를 기다리는 섬 혹은 여인의 모습, 가사가 있었으면 더욱 어울렸겠지만 프립은 그런 우를 범하지 않았다. 기다리는 자는 조용히 기다릴 뿐이니까. 마지막으로 이 작품의 주제이자 배경이 되었던 한 섬, ‘Island’를 노래하며 이 앨범은 끝을 맺는다. 멜 콜린스의 섹소폰을 뒤로 한채…

프립의 절묘한 작곡, 그리고 각 연주가 일체가 되어 조화를 이루게 하는 편곡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이 앨범에 대해서 크림슨 매니어인 한 평론가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였다. “이번 네번째 앨범을 통해서 프립은 한가지를 확실하게 증명해 주었다. 그는 천재적인 작곡가이고 아마도 현재 록계에서 가장 절묘한 박자와 악기편성을 구사하는 아티스트라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한 사람의 크림슨 지지자로서 크림슨이 그들의 첫번째 앨범에서 보여준 ‘충격’으로서의 록 음악으로 돌아오길 바란다.“ 후술하겠지만 이 평론가의 바램은 이루어졌다.

“Earthbound” – 변화의 징조

동년 11월 10일 그들은 미국 투어를 떠나고 그 가운데 다시금 위기를 맞이한다. 피터 신필드가 그룹을 탈퇴할 의사를 밝힌 것이다. “특별히 우리가 어디선가 실패했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투어는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옛날 영국에서의 투어와는 전혀 다르다. 이제 나는 이전의 집으로 돌아가 시나 쓰는 쪽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로버트 프립과 피터 신필드의 결별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결정적인 것은 독특한 개성을 갖고 있는 이 두 사람의 음악적 경향이 서로 달라졌기 때문이다. 당시 프립의 이야기이다.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우리 둘 간의 창조적인 관계가 끝나버렸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당시 미국에서의 라이브를 담은 앨범 “Earthbound”는 당시 크림슨의 음악이 어떠한 형태로 변하고 있으며 왜 피터 신필드가 탈퇴하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해 준다. 당시 아일랜드 레코드의 염가 레이블인 ‘Help’에서 발표된 그들의 첫번째 공식 라이브 앨범은 해적판에 가까운 열악한 음질로 영국 외에서는 발표되지 않았다. 하지만 자료상으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앨범은 크림슨의 공식 앨범 가운데서 가장 구하기가 어려운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이 앨범에 수록된 ‘Peoria’를 들어보자. 이전의 형식적 일체감과 구조 지향주의는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는 소울과 전통적 록에 가깝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제 크림슨의 음악은 그 힘의 원천으로 전통적 록을 선택한 것이다. 과거 관념적인 ‘소리의 유희’에서 벗어나 좀더 인간적, 육체적 소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계산된 소리의 해체, 즉 코스모스의 카오스화가 아닌 코스모스가 되기 전의 카오스로서 육체에서 발현되는 즉흥적 소리에 귀기울이기 시작한 것이다.

마침내 프립은 크림슨 해체 성명을 발표한다. – 1회 끝 –

사실, 오래전부터 크림슨에 대한 글을 써 보겠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그때마다 생각에만 그칠뿐 실천에 옮겨지지는 못했다. 자칫 그들의 음악을 곡해할 수 있다는 두려움, 그리고 한 작품의 리뷰를 쓴 후 그 음반은 한참동안 턴테이블에 올려지지 않았음을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번 특집에서는 이전의 글과는 조금은 다른 형식을 택하였다. 하지만 막상 끝내놓고 보니 독자들에게 그들의 음악을 제대로 소개하기에는 아무래도 역부족이 아니었나 싶다. 단, 독자들이 이 글을 읽은후 크림슨 음반을 자신의 턴테이블 위에 얹어 놓게되기를 바랄뿐이다.

7. 들어가기에 앞서

I.

압구정동에는 필자가 자주 가는 까페가 하나 있다. 압구정동의 까페라고 하면 무언가 패셔너블하고 ‘포스트 모던’한(필자주: 여기서 ‘포스트 모던’하다는 뜻은 종종 잡지나 신문에서 아무 생각 없이 혹은 경멸의 의미로 사용되는 ‘포스트 모던’과 동일한 의미임. 진정한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의 오해가 없기를 바람) 인테리어로 장식된 까페를 연상하겠지만 이 까페는 그러한 단어들과는 거리가 먼 단아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는 곳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필자를 그 곳의 단골로 만들게 한 것은 거기에서 흘러나오는 따뜻한 진공관 앰프 소리 때문이다.

매우 오랜만에 그 곳에 들렀을 때의 일이다. 거의 영업 시간이 끝났을 무렵, 그 곳의 주인 아저씨가 필자가 마침 사가지고 온 CD 한장을 보고는 틀어주겠다고 한 것이다. 그 곳의 분위기와는 맞지 않는 것이라고 극구 사양하였지만 자신도 한번 들어보고 싶다며 청하는 통에 승낙을 해버렸다. 마침 건너편에는 또다른 네 명이 맥주를 마시고 있었는데 그들의 대화 내용을 살짝 엿들어보니 무언가 창작 활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임에 분명했고 그 일이 잘 되었기에 자축연을 하는 듯 했다. 그런데 음악이 나오자 갑자기 그 중 한 사람이 튀어나와 춤을 추기 시작한 것이다. 술에 취한 어설픈 춤을… 다른 손님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말이다. 아무튼 그날 그 곳의 손님들은 모두 기분 나쁜 느낌을 받았음이 분명할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일이 또 다시 일주일 후에 일어났다. 홍대 앞의 한 까페(이 까페의 한가운데에는 공연을 위한 무대가 있다)에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이야기를 하고 있을 무렵, 술에 좀 취한 듯한 한 친구가 무대위로 올라와 음악에 맞추어 비틀거리며 춤을 추는 것이었다. 춤사위를 보건대 어느 정도 배운 듯한 것이기는 하지만 술에 취한 벌건 얼굴을 하고 흐트러진 복장으로 끈덕지게도 계속하는 그 무언의 ‘폭력’에 필자를 비롯한 일행은, 그리고 그 곳에 있었던 손님들은 아마도 분노와 모멸감을 느꼈을 것이다. 필자는 가끔 그러한 행동을 보여주는 몇몇 소위 ‘예술가’들을 본 적이 있고 그 때 마다 그들의 무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는 대중에 대한 우월감과 ‘자연’인 척 하는 ‘지독한 인위’에 놀란 적이 많다. 우리의 많은 예술가들, 이 척박한 풍토 속에서 노력하고 계시는 많은 진정한 ‘예술가’들을 욕되게 하는 몇몇(혹은 많은) 쓰레기 같은 소위 ‘예술가’에게 우리 대중이 보낼 수 있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경멸’이다.

II. - 한 가지 듣고 싶은 것은 당신이 실비안(David Sylvian)의 어떤 부분에 공감하여 함께 앨범을 만들게 되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R: 그의 인간성이지요. 그 이상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 그것은 당신이 실비안에게 강하게 공감하는(음악적으로) 점이 있기 때문입니까?

R: 그런 것이 있다고는 생각합니다만 똑같이 우리가 서로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달성시키는가에 관한 것이지요. 우리는 서로 접근방법이 달라요. 그러나 그러한 차이점은 장애가 아니라 차라리 가능성을 보다 넓혀주는 것이었습니다.

8. 새로운 킹 크림즌의 결성

“크림슨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다음에 등장할 때는 마술적인 밴드가 되어있을 것이다."

1972년 그룹의 일시적 해체가 결정되었을 때 로버트 프립(Robert Fripp)이 남긴 말이다. 아마도 이 당시 이미 프립에게는 새로운 크림즌의 음악에 대한 구상이 매우 구체적으로 세워져 있었을 것이다. 그 다음에 남은 것은 이러한 구상을 실체화시킬 뮤지션을 고르는 문제이다. 그해 7월 새로운 크림즌의 멤버들이 결정되었고 리허설을 시작한 며칠후 그 이름을 공개하였을 때, 많은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예스(Yes)의 빌 브루포드(Bill Bruford), 패밀리(Family)의 존 웨튼(John Wetton), 뮤직 임프로바이제이션 컴퍼니(Music Improvisation Company)의 제이미 뮤어(Jamie Muir), 무명 바이올린 주자 데이빗 크로스(David, Cross), 그리고 로버트 프립, 이 다섯 명이 새로운 크림즌 음악을 구체화시킬 뮤지션이었던 것이다. 당시 예스의 존 앤더슨(Jon Anderson)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문을 통해 빌의 탈퇴를 알게 되었을 때 충격을 받았어요. 하지만 빌은 전부터 ‘혹시 내가 장래에 함께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로버트 프립 한 사람뿐이다’라고 이야기 했지요. 그래서 2년 이내에는 예스의 드러마가 교체되겠구나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것은 생각보다 빨리 다가왔어요.”

프립과 빌 브루포드의 만남은 매우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운명적인 것이기도 하다. 믿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재미있는 일화 한 가지. 예스가 미국 공연을 마친 후 새로운 앨범의 녹음을 위해 잠시 휴식기를 가질 무렵 빌은 예스의 멤버들과 떨어져 자신만의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빌이 도어셋(로버트 프립의 고향)에서 차를 운전하다가 길을 잃어버린 것이었다. 이 외딴 도시를 헤매다가 한 집을 어렵게 발견하고 문을 두드렸다. 그런데 그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로버트 프립이었던 것이다. 프립은 그를 반겨 맞았고 음료수를 권하며 새로운 크림즌에의 가입을 권유하였다. 마침 예스를 탈퇴할 마음을 가지고 있던 빌은 다음날 전화로 프립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다. 6월 예스의 새로운 앨범 레코딩이 끝나면 세션을 시작하겠다고. 그들의 관계는 이렇게 시작되었고 빌 브루포드는 프립이 가장 신뢰하는 드러머로 크림즌 역사상 가장 오래 프립과 함께 한 뮤지션으로 기록된다.

==‘Lark’s Tongues In Aspic’ – 우주원리와 신비주의 그리고 록 ==

“피타고라스(Pythagoras)가 음악에서 발견한 몇가지 수학적 사실을 근거로 하여 모든 사물의 근본이 수에 있다는 생각에 도달하기는 아주 쉬웠을 것이다. 따라서 사람이 살고 있는 이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물들의 근본을 이루고 있는 수적(數的) 구조를 알아내야 한다. 인간은 이 세계의 수적 구조를 파악하자마자 이 세계를 제어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정말 지극히 중요한 생각이다.” (버트란드 러셀의(Bertrand Russell) 「서양의 지혜」(Wisdom of the West) 중에서, 이명숙/곽강제 옮김, 서광사, 1990)

“올페우스(Orpheus)의 교리는 금욕주의적 경향이 있으며 정신적 황홀의 경지를 강조한다. 올페우스는 이를 통해 ‘열광적 열중’, 즉 신과의 합일 상태에 들어감으로써 다른 방도로는 찾을 수 없는 신비로운 지식에 도달하기를 바랐다.” (같은책)

1973년 1월과 2월 킹 크림즌은 런던의 한 스튜디오에서 새 앨범을 제작한다. 동년 3월 23일 이 앨범은 ‘Lark’s Tongues In Aspic’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된다. 앨범의 자켓에는 태양과 달이 합체된 모습이 담겨져 있다. 이러한 자켓은 예전 크림즌의 그것과 달리 매우 상징적이며 그들의 음악적 동기와 의지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陽과 남성을 상징하는 태양, 그리고 陰과 여성을 상징하는 초승달의 합일은 소우주를 상징한다. 여기서 우선 짐작할 수 있는 것은 크림즌의 음악적 토대가 서양에서 동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크림즌의 음악은 자연의 한 부분을 모방, 혹은 묘사하면서 그 ‘방법’ 자체로 자신의 세계관을 표방하려한 서양의 예술이 아닌, 유기체와 생명의 ‘자연 그 자체’를 상징을 통해 표현하려한 인도의 예술적 동기를 받아들인다. 자연과 우주를 하나의 대상으로 선정하고 자신의 주관적 가치로 이를 변형하려 하는 서양의 개인적 예술관에 반기를 든 것이다. 이전의 작품에서 종종 등장하는 상징적 체계가 부분적 자연(서양의 과학은 쪼갬과 부분(科)의 학문(學)이다. 끝까지 쪼갠 후에 이를 합치려하나 아직까지 수백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합치려는 의지는 그다지 강한 것 같지 않다. 그 이유는 아직 ‘덜’ 쪼갰기 때문이다)이나 인간의 잠재의식 속에 담겨 있는 파편적 이미지를 나타내려 했던 것을 상기하면 이는 매우 큰 변화이다. 하지만 크림즌 음악이 이러한 인도나 중근동(中近東)의 예술관에 완전히 전도된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소리 자체의 강약, 그리고 그 음공간적 영향력의 정도는 양기와 음기를 상징하려한다. 프립의 기타 소리는 에너제틱하고 역동적인 陽을 상징한다. 이에 반해 데이빗 크로스의 바이올린과 비올라는 이러한 陽의 소리를 감싸면서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陰의 소리이다. 하지만 첫곡인 ‘Lark’s Tongues In Aspic pt. 1’에서는 이러한 양과 음의 소리가 합체한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이 둘은 서로 물과 기름처럼 떨어지려 하며 서로를 견제한다. 아직은 우주생성 이전인 것이며 곡 첫부분에 나타나는 제이미 뮤어의 타악기 소리는 이러한 혼돈 상태를 잘 표현해 주고 있다. 이것은 혼돈이지만 생명력이 있는 혼돈이다. 그들이 인도적 예술관을 표방한 것은 소리 자체, 즉 그 소리의 질과 강약, 그리고 이들의 상호 위치 관계에서이다. 하지만 예리한 청자라면 무언가 수상쩍은 것을 발견하였을 것이다. 그것은 빌 브루포드의 드러밍이다. 그의 드러밍에서 一打一打가 만들어 내는 분할은 매우 수학적이고 비례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조화 관념은 피타고라스학파의 기초가 되는 세계관이다. 사실 빌 브루포드의 드러밍뿐 아니라, 곡의 구조나 프립의 기타 플레이에서도 이러한 점은 자주 발견된다. 이러한 동서양의 우주관을 동시에 한 음악에 수용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이에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하나는 프립 자신도 아직까지는 어느 한 쪽 우주관에 대하여 확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가 발견한 두 우주관의 공통점, 즉 둘 다 부분적 우주가 아닌 전체적 우주를 지향하려 했다는 점 그리고 이 양자가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신비주의적 형이상학적 색채 때문이다. 그런데 프립이 이 앨범을 발표하기전 하였던 발언 – 이후 새로운 킹 크림즌은 ‘마술적 밴드’가 되어 있을 것이라는 – 으로 추론하면 아마도 후자의 것이 좀 더 가능성이 크다고 보여진다. 더욱이 ‘Book Of Saturday’나 ‘Exile’과 같은 마이너조의 발라드에서 나타나는 신비주의적 요소는 이러한 추론에 확신을 더해준다. 이 앨범에서의 곡 배치를 보면 ‘Lark’s Tongues In Aspic’의 두 파트가 양단에 비치되어 있다. 첫번째 파트에서의 혼돈은 결국 두번째 파트 끝부분 즉 이 앨범의 마지막에서 장엄한 합체를 보여주며 우주생성의 대 드라마를 완성시킨다. 이 사이에 전술한 신비주의조(調)의 곡들이 위치하므로 크림즌이 이 앨범에서 표방하는 소우주론은 신비주의를 감싸고 있는 양상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 앨범에서 반드시 간과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이 음악이 인간으로부터 발현되는 ‘록’음악이라는 것이다. 뮤즈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것이다. 이는 크림즌의 음악뿐 아니라 모든 아트록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점이다.

이성과 로고스(logos)를 상징하는 아폴로(Apollo), 신비와 격정적 행동을 상징하는 디오니소스(Dyonisos), 그리고 정신적 황홀의 경지를 강조하는 올페우스의 만남, 이 세 신들과 그 상징은 아트록의 성격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낸다. 결국 아트록이란 초기 그리이스 문화와 예술로의 복귀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아트록, 특히 크림즌이 이러한 경향을 보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너무나도 간단한 이유이다. 나름대로는 다시 인간으로, 인간을 위한 예술로 한걸음 더 나아가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기 위함이다. 프립은 당시 「롤링 스톤」(Rolling Stone)지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내가 특별히 음악을 좋아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음악은 단순히 마법적인 상태를 만들어내기 위한 한 가지 수단에 불과합니다. 마법(Magic)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 상당히 일상적인 것이지요. 일상의 생각과 행동 하나하나에 반영될 수 있는 것입니다. 즉, 그것은 각자가 자신의 의식과 정신을 제어한다라는 실험적인 시도이지요.”

하지만 프립 선생, 그것이 너무 소박하고 보수적인 방법론이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9. Starless and Bible Black – 텍스춰(Texture), 힘 그리고 아방가르드 록

70년대 초반기 프립은 크림즌의 활동과 병행하여 다수의 공동작업을 행하는데, 이중 가장 중요한, 그리고 프립과 크림즌의 음악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은 브라이안 에노(Brian Eno)와의 작업이다. 1972년 9월 어느날 저녁, 에노는 프립의 홈 스튜디오를 찾아와서 그가 새로 고안한 음향 시스템을 보여준다. 그것은 두 대의 테이프 녹음기로 소리를 재생하는 것이었다. 매우 간단한 장치이지만 거기서 재생되는 새로운 소리에 영감을 받은 프립은 그와의 공동작업에 착수하고 앨범 ‘No Pussyfooting’을 발표한다. 이후 프립은 연주 테크닉 상의 변화나 기존에 잘 쓰이지 않는 색다른 악기를 사용하는 것 이외에도 기술적인 것에 의해 새로운 소리를 창조하는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데, 이것이 그가 새로운 연주 장치인 프리퍼트로닉스(Frippertronics)를 고안하게 되는 계기가 된 것이다. 또한 에노와의 공동작업 중 프립은 미니멀리즘(minimalism)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는데, 이는 1981년에 재결성되는 크림즌의 작품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프립은 에노에 대해 다음과 같은 찬사를 보낸다.

“그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신세사이져 주자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손가락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귀를 사용하기 때문이지요.”

이후 프립은 크림즌의 라이브에서도 종종 ‘No Pussyfooting’에 담긴 곡을 연주하게 된다.

1973년의 유럽과 미국 투어에서 프립과 크림즌은 아주 참담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음악 관계자들의 상업주의와 관객들의 몰이해, 소란 그리고 평론가들의 혹평(이들중 대부분은 그들이 청중앞에서 연주하는 록 밴드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지적인 음악을 한다는 냉소와 비꼼이었다). 이러한 상황은 이태리 공연때 극에 달해 프립은 많은 회의를 느끼게 되고 이는 이후 크림즌을 해체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악몽과도 같은 이 투어가 끝난후 타악기주자 제이미 뮤어가 탈퇴하여 네 명의 밴드가 된 크림즌은 새 앨범을 발표한다. 제목은 ‘Starless And Bible Black’. 이 제목은 영국의 시인 딜런 토마스(Dylan Thomas)가 말년에 발표한 詩劇, ‘Under Milk Wood’ 중 한 구절을 인용한 것이다. 모두 여덟 곡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앨범을 국내에서는 아직까지도 스튜디오 앨범인줄 아는 사람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은 앞의 두 곡을 제외한 나머지 여섯 곡은 모두 73년 말 투어에서의 실황연주이다. 이 곡들은 모두 녹음도 뛰어나고 청중들의 소리가 깨끗이 제거되었기 때문에 이후 프립이 크림즌의 베스트 앨범인 ‘The young Persons’ Guide To King Crimson’에서 이 사실을 밝히기 전까지는 당시 영국의 평론가들조차도 이를 스튜디오 곡들로 알고 있었다.

이 앨범으로 크림즌은 전작에서 보여주었던 동양적이거나 원초적인 아방가르드에서 완전히 벗어나 서양적이고 세련된 아방가르드 록으로 돌아섰다. 이전 작품에서 보여주었던, 마치 빛과 같은 소리의 동심원적 퍼짐이나 제이미 뮤어의 원시적 타악기 소리, 그리고 프립의 파괴적인 기타음은 모두 정연한 텍스춰 안으로 제자리를 찾아갔다. 이 앨범의 곡들은 언뜻 듣기에는 난해한 음악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매우 정연한 음악이다. 때문에 보다 파괴적이고 비서양적인 음의 확장을 바라는 이들에게는 불만을, 그리고 이전의 작품에서 보여준 경향이 무언가 산만하다고 느끼는 이들에게는 만족을 가져다 주었다. 당시의 평론가들도 ‘완전무비한 걸작이다’라는 평과 ‘최악의 앨범이다’라는 극단적인 평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의 평들을 살펴보면 대체적으로는 찬사가 주를 이루는데 다음은 「디 옥시덴탈」(The Occidental)誌의 평이다.

“‘Starless and Bible Black’은 가장 드라마틱한 작품 중의 하나이며 오늘날 즉흥적 아방가르드 음악 중 최상의 전형이다.”

이 앨범은 이전의 작품과 비교하여 잃은 것도 있지만 얻은 것이 더 많은 작품이다. 첫번째는 초기 작품에서 보여주었던 드라마틱함이 훨씬 더 모던한 형태로 – 아방가르드나 발라드와 결합하여 – 재현되고 있다는 점이며, 두번째는 이전 작품과 같은 음악적 동기를 더욱 확장시켜 나갔을 경우에 생길 수 있는 음악적 실패를 미연에 방지하였다는 점이다. 사실 필자의 사견으로는 크림즌의 음악이 여전히 전작을 계승하고 반(反)서양이 아닌 비(非)서양으로 한걸음씩 전진하면서 서양을 다시 부둥켜 안을수 있는 음악을 창작하였다면 (물론 록음악의 힘을 상실하지 않으면서) 더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크림즌과 프립은 그럴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능력 안에서만 완벽한 작품을 만들지 더 이상의 모험은 하지 않으며, 그는 그것을 미덕으로 삼고 있다. 이는 크림즌 음악을 단지 ‘감상용 음악’으로 만들어 버린 결정적인 이유로 작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감상용 작품’으로서는 최상품을 만들어 냈고, 어떠한 분야에서도 최상이란 그 분야를 뛰어넘는 신비로운 힘을 가지고 있다. 모든 소리가 텍스춰 안으로 들어갔어도 그 텍스춰가 사회적인 통념을 거부한 크림즌만의 텍스춰이기 때문에 그 소리들은 제 집을 찾아간 듯이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발휘한다.

이 앨범으로 크림즌이 2집부터 추구해온 ‘構造안에서의 소리의 자유와 힘’은 어느 정도 완성되었다고 평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앨범이 발표될 즈음 크림즌은 분열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다.

10. Red – 타락한 천사의 유언

미국 투어(이 투어의 라이브 곡들은 이후에 발매된 라이브 앨범 ‘USA’에 실리게 된다)에서 돌아온후 바이올린 주자 데이빗 크로스가 탈퇴를 선언한다. 그가 프로페셔널한 음악가로서 활동한 첫 그룹이 킹 크림즌이라는,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완벽 지향 밴드였다는 것이 그에게는 불행이었던 것이다. 투어 이후 극도로 신경이 날카로와진 그는 더 이상 견디기 어려웠고 하루 빨리 휴식을 취하고 싶어했다. 결국 크림즌은 프립, 웨튼, 브루포드의 트리오 밴드가 되고 만다. 당시 프립은 투어 이후 크림즌의 존재에 대하여 매우 회의를 갖게 된다. 가장 큰 이유는 그가 다른 멤버들과 함께 하나의 그룹으로서 연주하는 것이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느낀 것이다. 당시 프립의 인터뷰에 따르면 즉흥 연주 시각 멤버들은 다른 멤버들의 연주에 대해 무관심한 상태에서 연주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의 말이 사실이었다면 한 사람의 단순한 연주가가 아닌 음악가로서 크림즌을 하나의 유기적인 조직으로 이끌려한 프립에게 크림즌이란 음악적 공동체는 이제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프립은 이전의 멤버인 이안 맥도날드(Ian MacDonald)와 멜 콜린스(Mel Collins)를 참여시켜 새 앨범의 제작과 함께 대대적인 세계 투어를 계획한다. 그런데 새 앨범 녹음이 시작된 1974년 7월 8일 프립은 충격적인 발언을 한다.

“어제 밤, 나는 내 자신이 크림즌으로부터 탈퇴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상당히 충격적인 체험이었다. 내 안에 자리잡고 있던 크림즌은 죽어버린 것이다.”

사실상 크림즌의 해체가 결정된 것이다. 하지만 새 앨범의 녹음은 예정대로 7월 8일부터 진행되었고 크림즌의 해산이 공식적으로 발표된 것은 9월 28일 「뉴 뮤지컬 익스프레스」(New Musical Express)지를 통해서였다. 해산이 공식적으로 발표되기 전 프립은 「멜로디 메이커」(Melody Maker)지의 로버트 파트리지(Robert Partridge)에게 크림즌이 해체되어야만 하는 세 가지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첫번째는 세상이 바뀌었기 때문이고, 두번째는 한 때 나는 크림즌과 같은 밴드가 젊은이들이 받을수 있는 가장 자유롭고 진보적인 교육으로서 기능한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번째는 이 밴드의 독특한 생활 양식과 그 음악에 담겨있던 에너지가 내 인생에 있어서 더 이상 그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러한 개인적인 변화 외에도 점점 더 상업적이 되어가는 음악 산업계는 그로서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크림즌의 새 앨범 ‘Red’가 완성된다.

우선 이 작품의 커버를 보자. 크림즌의 앨범으로서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멤버들의 사진이 실려 있는데 미소를 짓고 있는 존 웨튼과는 대조적으로 프립의 표정은 당시 그가 극도로 신경이 날카로운 상태였다는 것을 잘 알 수 있게 한다. 5년후인 1979년 「멜로디 메이커」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당시 자신의 상태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내 머리는 터져버릴 지경이었으며 도저히 제대로 기능할 수 없었다. 내 자아(ego)는 사라져 버렸다. 3개월(필자주: ‘Red’앨범 녹음 시기) 동안 나는 내 자아를 잃어버렸다.”

그의 이야기대로 당시 그의 이성은 제대로 기능할 수 없었으며 이로 인한 혼란은 극에 달하였다. 커버 뒷면의 게이지는 그가 이미 위험 상태(red level)를 넘어섰음을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이로 인해 마지막 앨범인 ‘Red’는 그의 내면에 잠재하고 있던 광기가 음악을 통하여 가장 강렬하게 표출된 작품이 될 수 있었다. 첫 수록곡 ‘Red’를 비롯한 작품 전체에서 보여주는 프립의 신경질적인 기타음에는 혼돈과 분노, 그리고 이전에는 이성에 의해 제어되거나 가리워졌던 내면의 광기가 표출되고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앨범이 걸작으로 불릴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 앨범은 프립에게 있어서는 불만스러운 것이었을 것이다. 그는 그의 음악에서 광기를 표출하되 그것이 이성에 의해 제어되기를 원했었기 때문이다. 그가 이전 ‘우리는 지적인 밴드이다’(We are an intellectual band)라고 한 발언은 이러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며 또한 이에 대해 자긍심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나타내는 것이었다.

이 앨범에서 자신의 역량과 페이스를 잃지 않고 연주했던, 아니, 어느 앨범보다도 자신의 실력을 발휘한 빌 브루포드는 프립에 의한 일방적인 크림즌 해체를 가장 불만스러워 했다. 예스의 성공이 극에 달했을 때 예스를 탈퇴하여 오직 음악을 위해 크림즌에 가입한 그로서는 실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아무튼 크림즌은 해체했다. 중기 크림즌 최고의 명곡인 ‘Starless’를 남긴채… 프립선생, 그토록 절망적이었습니까?

Ice blue silver sky

Fades into grey

To a grey hope that oh years to be

Starless and bible black

(‘Starless’중, 리차드 파머–제임스(Richard Palmer-James) 작시) 새로운 음악적 지평을 향하여 – 1976년에서 1981년까지

1974년 크림즌 해산 후 프립은 당분간 음악적 활동을 완전히 중지한다. 그러던 1976년, 당시 제네시스(Genesis)를 떠나 자신의 솔로 앨범을 준비하던 피터 게이브리얼(Peter Gabriel)로부터 전화가 온다. 물론 자신의 앨범에 참여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피터 게이브리얼의 음악적 재능을 잘 알고 있는 프립은 이에 응하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그는 다시 음악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그가 이 솔로 앨범에 참여한 비중은 그다지 크지 않았지만 이 작품이 전체적으로 무엇인가 언밸런스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광기’를 중요시 하는 게이브리얼과 ‘이성’을 중시하는 프립 사이에 존재하는 음악적 관점 차이때문일 것이다. 게이브리얼은 실재세계(real world) 속의 인간과 그 육체를 중요시 한 반면 프립은 이성의 올바른 기능에 의해 구성되는 관념적 세계(ideal world)와 그 구조를 중요시했기 때문이다. 피터 게이브리얼과의 작업을 마친후 뉴욕으로 건너간 프립은 그의 생각을 조금씩 수정하기 시작한다. 당시 뉴욕은 기존 음악이 갖는 일방적 아카데미즘에서 벗어나 대중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음악을 위한 여러 실험이 행해지고 있었다. 대중과 함께 호흡하되 점점 복잡해지는 사회 속에서 인간의 소외를 분석∙비판하면서, 기존 양식을 혼용하고 미디어와 결합하는 여러 형태의 음악이 등장하던 당시 뉴욕의 분위기 속에서 프립은 많은 영감을 얻게 된다. 당시 프립이 영감을 받은 것은 로리 앤더슨(Laurie Anderson)이나 스티브 라이히(Steve Reich)등과 같은 소위 고급 대중 예술가들의 작품뿐 아니라, 기존의 음악 산업과 음악적 가치에 대해 반기를 들고 나타난 펑크그룹들의 작품도 포함되어 있는데 필자의 판단으로는 오히려 후자의 영향이 더 강하지 않았는가 생각된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음악에 펑크를 도입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만의 기타음을 여전히 고집하고 있었다. 그가 펑크록이나 뉴웨이브 앨범(예로 블론디(Blondie)나 토킹 헤즈(Talking heads), 그리고 데이빗 보위(David Bowie)의 앨범)에 참여하여 실험한 것은 자신이 개발한 기타음과 방법론이 자신의 영역인 아트록뿐만이 아닌 다른 쟝르의 음악에서도 적용가능한가 하는 점이었으며, 이렇게 대중에게 열려진 쟝르의 음악을 통하여 대중과 음악과의 새로운 관계를 탐색하고 검증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작업 중에 얻어진 데이터는 이후 자신의 작업이나 새로운 크림즌의 음악적 방향을 결정하는데 적용되었다. “여보세요, 나 브라이언이야. 여기 베르린인데 지금 데이빗이랑 같이 있어. 잠깐만 기다려, 바꿔줄테니까.” (브라이언 에노)

“우리끼리 기타연주를 어떻게 해볼려고 했는데 잘 안되네요, 형님이 와서 한번 끝내주게 연주해주지 않으시겠어요?” (데이빗 보위)

“야, 나 삼년동안 기타에서 손 땠는데… 하지만 가보지 뭐!” (로버트 프립)

이 시기에 프립에게 생긴 가장 큰 변화는 이제 그가 열린 마음을 갖고 음악을 대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그가 이전에 크림즌을 ‘지적인 밴드’라고 하며 대중과 단절된 상태에서 창작을 하던 때와 비교하면 이는 매우 큰, 그리고 결정적인 변화이다. ‘어떠한 소리’를 만들어야 하는가가 아닌 ‘어떻게 들려지는 소리’를 만들 것인가에로 관심이 바뀐 것이다. 즉 예전의 그의 창작 방향이 ‘자신(크림즌)-음악-세계(혹은 우주)’의 관계 속에서 정해진 것이었다면, 이제는 ‘자신-음악-구체적 청자-그 청자로 이루어진 사회’의 관계 속에서 정해지게 된 것이다.

그는 다른 그룹에 참여하는 것외에 자신의 솔로 앨범이나 프로젝트 앨범을 통해서도 자신의 실험을 계속 진행시키며 새로운 크림즌의 구도를 세워 나갔다. 이러한 그의 일련의 솔로 앨범은 대체적으로 그 완성도가 크림즌의 앨범의 그것에 비해 훨씬 떨어지는 것이었지만 그 이유는 이 작품들이 하나의 작품으로서 의미를 지닌다기 보다는 실험으로서의 의미가 더 강하였기 때문이다. Modern Crimson과 삼부작(Trilogy)

크림즌 해산 후 7년이 지난 1981년, 프립은 새로운 밴드를 결성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한다. 새로운 밴드의 멤버는 그와 빌 브루포드, 토킹 헤즈와의 작업에서 알게된 에이드리언 벨류(Adrian Belew), 그리고 당시 피터 게이브리얼과 함께 활동하던 토니 레빈(Tony Levin), 네 명이었다. 에이드리언 벨류는 미국인으로 토킹 헤즈뿐만이 아니라 프랑크 자파(Frank Zappa)나 데이빗 보위의 작품에도 참여한바 있지만 프립이나 브루포드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짧은 음악 경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들에 대해 일종의 존경심을 가지고 있어 그들의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 상당히 노력했다고 한다. 토니 레빈은 당시로서는 생소한 스틱(Stick)이라는 일종의 베이스를 연주하였는데 이는 높은 음 다섯줄과 낮은 음 다섯줄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 양손으로 두들기듯이 연주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타나 베이스 연주 기술뿐 아니라 건반악기 연주기술도 함께 요구되는 고난도의 악기이다. 이 탁월한 베이스 주자는 이미 피터 게이브리얼의 앨범을 비롯하여 링고 스타(Ringo Starr)나 아트 가펑클(Art Garfunkel)등의 앨범에서 놀라운 테크닉을 보여주었는데 특히 피터 게이브리얼의 라이브 앨범 ‘Plays Live’에서 우리는 그의 스틱음을 만끽할 수 있다. 프립은 토니 레빈의 연주가 마음에 들어 이미 자신의 이전 솔로 앨범인 ‘Exposure’에 그를 기용하기도 하였으며 결국 크림즌의 새로운 멤버로 결정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두명의 새 멤버중에서 특히 에이드리언 벨류를 멤버로 기용한 것은 새 크림즌의 음악이 크게 변화할 것이라는 것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프립이 정통 브리티쉬 아트록이 아닌 다른 계열의 음악을 해온 미국인을 참여시킨 것은 과연 어떠한 의미일까. 우선 벨류가 함께 활동하던 토킹 헤즈의 음악을 살펴 보면 약간의 해답이 나온다. 토킹 헤즈는 데이빗 번(David Byrne)이라는 탁월한 록 아티스트이자 作詩家가 이끌던 일종의 미국적 포스트 모더니즘(여기서 ‘미국적’이란 수식어를 사용한 이유는 주로 미국에서 유행하던, 문학 등의 예술적 포스트 모더니즘과 프랑스의 철학적 포스트 모더니즘, 혹은 포스트 구조주의를 구분하기 위함이다) 밴드라고 볼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첫번째는 대중에게 친숙한 멜로디와 소리, 그리고 반복 리듬을 사용하고 있고, 기존의 서구적 방법론뿐만이 아닌 아프리카 등 비서양의 그것을 혼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브라이언 에노와 데이빗 번에 의해 창조된 현대의 소리와 과거의 소리가 혼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 세번째는 가사 내용이 지금∙여기의 인간이나 사회 그리고 그 문제점을 날카롭게 다루면서도 직접적인 묘사나 설명이 아니라, 일종의 비현실적인 표현 방식으로 은유하여, 겉으로 보여지고 해설되어지는 세계를 부정했다는 것이다. 아마도 프립은 이러한 토킹 헤즈의 방법론에 대하여 상당한 호의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벨류에게 기타, 보컬, 작시라는 커다란 임무를 맡긴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새로운 밴드의 이름이 처음부터 킹 크림즌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었다. 원래 프립이 구상한 밴드명은 디시플린(Discipline, 훈련)이었다. 하지만 다른 멤버들은 모두 킹 크림즌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자고 주장하였고 프립 역시 나중에는 이를 받아들여 결국 새로운 킹 크림즌이 탄생하게 된다.

이후 킹 크림즌은 1981년에서 1984년에 걸쳐 ‘Discipline’, ‘Beat’, ‘Three of a Perfect Pair’ 3장의 앨범을 발표하는데, 이 일련의 작품은 모두 동일선상의 작품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 세장의 앨범 커버에 모두 동일한 타이포그라피(typography) – ‘King Crimson’이라고 인쇄된 로고 – 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프립 역시 그러한 것을 의도했다고 보여진다. 이 작품들의 특징은 이전에 언급한 토킹 헤즈의 음악과 연관성이 있다. 즉, 비서양적인 방법론과 서양적인 방법론, 그리고 현대적인 것(혹은 기술적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 마지막으로 대중적인 요소와 실험적인 요소가 혼재되고 있다는 점이다. ‘Two Hands’(Beat)나 ‘Matte Kudasai’(Discipline)와 같은 발라드가 있는가 하면 ‘Neurotica’(Beat)나 ‘Dig Me’(Three of a Perfect Pair)와 같이 실험적인 곡도 있다. ‘Sleepless’(Three of a Perfect Pair)와 같이 전형적인 록 리듬을 사용하는가 하면 ‘Elephant Talk’(Discipline)이나 ‘Thela Hun Ginjeet’(Discipline)과 같이 비서양적인 고유 리듬을 차용하기도 하고 ‘Frame by Frame’(Discipline)과 같이 미니멀리즘적 반복 리듬이 나타나기도 한다. 아프리카나 중근동의 소리(땅의 소리)가 나오는가 하면 프리퍼트로닉스와 같은 기술적 가상의 소리(하늘의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그리고 내용적 측면에서는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들며 우리의 의식과 사회를 멜로디어스하게 혹은 분산된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이 작품들에서 프립의 기타 소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진다. 주된 것은 기타의 원래음을 유지하면서 변화를 최대한 억제하고 시공간을 정확한 크기로 분할하는 불연속음과 프리퍼트로닉스 등의 이펙트를 이용하여 시공간을 빈틈없이 메우는 연속음이다. 서양의 물리학적 세계는 연속과 불연속이 중첩된 세계이다. 물질은 데카르트(Rene Descartes)의 개념대로 연장(延長, Extension, 공간을 차지하고 있음)이기도 하고 근대 물리학의 개념대로 입자와 입자 사이에 빈 공간이 존재하는 불연속체이기도 하다. 그리고 현대 물리학은 이러한 연속과 불연속을 통합하려한다. 세계는 예측 가능한 것이기도 하고 예측 불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애매모호한 세계에서 결정적인 이야기는 부분적 이야기를 전체적인 것으로 확대하려는 권위이자 폭력이다.

애매모호한 세계가 되어 버린 것은 우리 시대의 슬픔인 동시에 축복이다. 80년대 크림즌의 세 작품은 이러한 의미에서 매우 동시대적이며 이 시대의 슬픔과 현실을 정확하게 (혹은 그 반대의 의미도 포함하여) 반영한다. 따라서 그들이 이들 작품에서 보여준 포스트 모더니즘적 성과는 한편으로는 포스트 리얼리즘의 성과이기도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은 이들이 대중보다 ‘한 걸음 더 오직 한 걸음만 더’ 앞서 갔다는 것이다.

크림즌은 프립의 계획대로 세 장의 앨범을 남기고 해산한다.

- 킹 크림즌 특집 끝 -

킹 크림즌 특집을 마치면서

크림즌이 해산한지도 벌써 10년이 되어간다. 하지만 프립은 지난 10년 동안에도 쉬지 않고 또 다른 크림즌을 위한 실험을 계속해왔으며 이제는 그 실험을 마치고 다시 새로운 크림즌을 탄생시킬 단계에 와있는 것 같다. 아마도 올해 3월쯤에 발매될 미니 앨범을 시작으로 새 크림즌은 본격적으로 활동할 것으로 보여진다. 새로운 작품이 이 척박한 시대의 우리에게 어떠한 충격적 영감을 선사할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필자의 이 졸고가 새 작품에 대한 이해를 조금이나마 도울 수 있기를 바랄뿐이다.

프립은 ‘완벽주의자’이다. 하지만 그가 이러한 완벽주의 때문에 점점 형식주의자가 되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에 걸린다. 필자는 프립 선생에게 이러한 점을 경계하라고 충고드리고 싶다. 하지만 혹 10년 후쯤 필자가 크림즌 특집을 다시 쓸 때면 그의 이러한 경향이 또 다른 음악적 지평을 열기 위한 한 실험이었다고 말할지도 모를 일이다. 과연?

Discography

킹크림즌의 앨범

In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 An Observation by King Crimson (1969)

In the Wake of Poseidon (1970)

Lizard (1970)

Islands (1971)

Earthbound (1972)

Larks’ Tongues in Aspic (1973)

Starless and Bible Black (1974)

Red (1974)

USA (1975)

The Young Persons’ Guide to King Crimson (1976)

Discipline (1981)

Beat (1982)

Three of a Perfect Pair (1984)

프립의 솔로 앨범 및 공동 작품

Giles, Giles and Fripp: The Cheerful Insanity of Giles, Giles and Fripp (1968)

Fripp and Eno: No Pussyfooting (1973)

Fripp and Eno: Evening Star (1975)

Fripp: Exposure (1979)

Fripp: “Silent Night” la Frippertronics (1979)

Fripp: God Save the Queen/Under Heavy Manners (1981)

Robert Fripp and the League of Gentleman: Same (1981)

Fripp: Let the Power Fall: An Album of Frippertronics (1981)

Andy Summers and Fripp: I Advanced Masked (1982)

Andy Summers and Fripp: Bewitched (1984)

Fripp: Network (1984)

Robert Fripp and the League of Gentlemen: Robert Fripp and the League of Gentlemen/God Save the King (1985)

Robert Fripp and the League of Crafty Guitarists: Live! (1986)

Toyah and Fripp, featuring the League of Crafty Guitarists: The Lady or the Tiger? (1986)

The League of Crafty Guitarists: Get Crafty I (1988)

Fripp: How I Became a Professional Guitarist (1988)

David Syvian and Robert Fripp: The First Day (1993)

The Robert Fripp String Quintet: The Bridge Between (1993) 프립이 제작에 참여한 작품

Keith Tippet: Blueprint (1971)

Keith Tippet: Ovary Lodge (1972)

Matching Mole: Matching Mole’s Little Red Record (1972)

Centipede: Septober Energy (1974)

Peter Gabriel: Same (1978)

Daryl Hall: Sacred Songs (1980)

The Roches: Same (1980)

The Roches: Keep On Doing (1982)

Elan Sicroff: Journey to Inaccesible Places and Other Music (Music by George Gurdjieff and Thomas de Hartmann)

Produced by R.Fripp and Tony Arnold Keith and Julie Tippett: Couple in Spirit (Mixed by R.f.) (1988)

프립이 제작에 참여한 작품

Van der Graff Generator: H to He Who Am the Only One (1970)

Van der Graff Generator: Pawn Herts (1971)

Colin Scott: Colin Scott (1971)

Peter Hammill: Fool;s Mate (1972)

Brian Eno: Here Comes the Warm Jets (1973)

Brian Eno: Another Green World (1975)

Brian Eno: Before and After Science (1977)

Peter Gabriel: same (1977)

David Bowie: “Heroes” (1977)

Blondie: Parallel Lines (1978)

Brian Eno: Music for Films (1978)

Talking Heads: Fear of Music (1979)

David Bowie: Scary Monsters (1980)

Various Artists: Miniatures-A Sequence of Fifty-One Tiny masterpieces

Edited by Morgan Fisher (1980)

Flying Lizard: Fourth Wall (1981)

Various Artists: Recorder Three (1981)

David Sylvian: Alchemy-An Index of Possibilities (1985)

David Sylvian: Gone to Earth (1986) ■


마지막 편집일: 2011-6-26 9:57 pm (변경사항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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